미여지 벵뒤
- 김병심

한 생 접어 나비가 되신다니
하얀 안개 낀 오작교에서
당신에게 하기 싫은 말
나비와 복사꽃으로 웃던 안녕이라는 말
가루로 날아올라 사라지는 당신이 남긴 말
이별 이별
얻어 쓴 이 생도 내게서 사라질 숨말
사랑 사랑


-『신, 탐라순력도』중에서 / 김병심 / 도서출판 GAK
‘미여지 벵뒤’는 제주 신화에 나오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뜻한다. ‘끝없는 허허벌판’이라는 뜻이다. 『세경본풀이』에서 ‘세경’은 넓은들과 땅을 뜻하며 농경신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제주에서 땅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세경, 즉 넓은 들과, 나무가 많고 덩굴로 덮여 있어 농사가 불가능한 ‘곳자왈’, 그리고 뒌땅, 즉 기름진 땅이 아니어서 너른 들인데도 농사가 안되는 땅인 ‘벵뒤’가 있다. 아마도 신화에서는 가슴이 미여지는 이별을 하는 땅이라는 의미로 ‘미여지 벵뒤’를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경계로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다. 슬픔의 기조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묘하게 카타르시스가 있는 시다.
<함성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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