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상황·현실문제’ 고려 없는 건축교육제도 논의 논란

교육제도 개선방안 포럼서 “5년제 아니어도 건축사자격시험 치를 수 있게 해달라”

2020년부터 건축사예비시험이 폐지되면서 5년제 건축학과 대학(원) 졸업생만 건축사자격시험을 치를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일부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건축사가 될 수 있는 길을 넓혀주자는 명목 아래 “건축사자격시험 응시대상을 4년제와 건축공학 졸업생까지 확대해야 한다”며 건축교육제도 개선을 주장했다. 하지만 학생과 시장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학과 유지에 급급한 ‘교수 밥그릇 지키기’ 주장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건축사자격시험 응시자격 확대가 답?
   전문 학위프로그램(Professional degree) 목적 훼손해선 안 돼
   건축교육 선진화 논의보다 학과존폐에 따른 자리보전에만 급급

2월 23일 대한건축학회 건축센터 강당에서 열린 ‘건축학·건축공학 교육제도 개선방안 포럼’에서는 건축사자격시험 응시자격을 확대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김진욱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건축교육, 실무제도 개선 아젠다’ 주제발표에서 “현재 단일경로로 되어 있는 건축사자격시험 응시 트랙을 건축공학 졸업자에도 확대하는 등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범 건국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도 “몇 년제 건축학과를 나오든 모든 학생이 각자 과정을 거쳐 건축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또, “4년제 졸업 시 국내 건축사가, 5년제 졸업 시 국제건축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며 “학생의 가능성을 막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남해경 위원도 “교육 내용과 자격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할 뿐 건축사자격 자체를 막는 것은 답이 아니다”라며 “대학도 건축학과를 생각해주지 않는다. 자구책은 우리가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선 건축서비스산업 현장 어려움은 고려하지 않고 교육제도를 논한다는 것은 공염불에 그칠 우려가 크다는 것이 건축사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시장에 진출해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시장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교육개혁과 병행돼야 한다는 것.
또 현행법상 5년제 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지 않더라도 건축사자격시험을 치를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5년제 대학 건축학과 졸업생이 아닌 경우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 건축사자격시험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성호 국토교통부 건축문화경관과 서기관은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건축사예비시험을 2020년에 폐지하는 것에 異論의 여지가 없다”며 “건축사로 진로를 변경하려는 건축공학 졸업생은 건축전문대학원에 진학하는 현행 시스템으로 기회를 주는 것이 맞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건축교육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애꿎은 건축사자격시험 제도에 모든 비난의 화살이 돌아갔다.
포럼에 참석한 한 건축계 관계자는 “교육제도 개선 논의 이면에는 5년제 인증을 받지 못한 대학의 경우 학과 존폐에 대한 위기의식이 바탕에 깔려있다”며 “미래 건축인력 양성을 위한 건축교육 선진화 논의보다는 학과존폐에 따른 자리보전에만 급급한 모습에 씁쓸하다”고 전했다. 다른 건축계 관계자도 “경쟁력이 없는 학과는 폐지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 5년제 건축전공 과포화...정원 축소해야
   면허대여 등 왜곡된 건축서비스시장 개선 선제돼야

교육부에 따르면 대학입학자원은 2016년 53만 명에서 2023년에는 39만 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건축 전공희망자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국내 건축학과 5년제 대학은 70여개다. 전국에 22개의 건축학과만을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와 대조된다.
5년제 전문학위 프로그램은 과포화상태인 반면, 건축사사무소 취업률이 35%에 그치고 있어 학생들의 진로에 명확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시장 개선이 선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통대학교 건축공학과 윤승조 교수는 ‘지방대학 건축교육의 현황 및 발전방안’ 주제발표에서 ‘인구감소와 국제적 경쟁력에 따른 건축산업 수요변화’와 ‘건축인력 공급 과잉’, ‘수도권 집중화’를 문제로 꼽으며, “5년제 건축학전공 대학이 너무 많아 대학 간 통폐합 및 정원 축소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민석 대한건축사협회 법제전문위원은 “대학 내 학과 자체의 존립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교육제도 개선은 건축학 교육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다”라며 “전문학위 프로그램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교육 프로그램의 차별화 등을 통해 졸업생의 경쟁력을 확보, 시장에서 인정받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위원은 또 “미래가 불투명한 건축 시장상황과 어려운 근무조건 등 현실적인 건축서비스 시장의 개선이 없다면 입학지원 수요 증가는 기대하기 어려워 학과프로그램 운영의 어려움은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이선영 교수도 “건축업역을 좀 더 공식화하는 작업이 선제되어 학회차원에서 면허대여 등으로 왜곡된 시장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건축학회는 건축교육 개선방안에 대한 공청회를 4월 26일부터 28일까지 제주도 해비치호텔에서 개최되는 2017건축도시대회에서 갖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