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구성원
하나하나가 깨어 있고
누군가의 작은 노력과
변화의 움직임이
이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꾼다


눈이 날리는 궂은 날씨와 추위가 반복되더니 계절은 어김없어 통도사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봄소식이 남쪽에서 들린다. 80년대 초 2월 이맘 때 건축사사무소 신입시절 하루 업무가 끝나면 같은 설계팀의 입사 선배 ‘ㄱ’과장님과 가끔 술집에 가곤 했다. 사무소가 광화문 교보빌딩 뒤 종로구청 근처였는데 주변에 서민 음식점이 많았다. 퇴근 길 어쩌다 청진동 해장국 골목을 지날라치면 가마솥에 하루 종일 고운 구수한 감자탕 냄새가 나를 힘들게 했다. 그 중에서 지금도 떠오르는 것은 교보빌딩 뒤 피맛(避馬)골에 있었던 ‘열차집’이다. 열차집은 이름 그대로 소박한 맛이 있어 의자는 뒤판도 없이 앉는 곳만 긴 나무판재로 되어 있었고 주메뉴는 녹두빈대떡에 소주, 막걸리였다.
입맛을 돋우는 노릇노릇한 색에 바삭바삭한 듯 약간은 부슬부슬 부서지는 녹두빈대떡 맛은 일품이었고 밑반찬으로 단출하게 나오는 간장에 절인 양파와 어리굴젓의 맛 또한 좋았다. 나는 술에 약해 서너잔 밖에 못 마셨지만 열차집의 떠들썩한 분위기와 서민적인 느낌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 후 나는 고향으로 내려 왔고 열차집은 청진동 재개발로 종각역 쪽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고향으로 내려 온지 30년 가까이 되었으나 열차집에 버금가는 빈대떡집을 찾지 못하다가 몇 년 전 비슷한 맛을 내는 집을 발견하였다. 며칠 전 친구와 그 집에 들러 녹두빈대떡을 주문했다. 얼마 있다 나온 빈대떡은 전과는 달리 가장자리가 진한 갈색으로 딱딱하게 굳어 녹두빈대떡 고유의 가치가 많이 훼손된 것이었다. 몇 젓갈 먹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싶어 다시 해 오라고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친구에게 의견을 물었다. 친구는 그렇게 하고는 싶은데 그 과정에서 기분이 더 나빠질것 같아 그냥 조용히 먹고 이 집에 다시는 오지 말자고 한다.
나는 친구와 다른 의견을 냈다. 그냥 먹게 되면 이 집 주인은 빈대떡이 잘못된 것을 모르기에 다른 손님에게 또다시 이런 빈대떡을 내 놓을 것이다. 또 하나는 ‘권리와 의무’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음식 값에 맞는 양질의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고 식당은 음식 값에 걸맞은 음식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역설했다. 다음에 다시 오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여 다음에 또 오기 위해 나는 문제제기를 한다고 친구를 설득하여 주인을 불렀다. 주인은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않은 대신 두말 않고 다시 해 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다시 해온 빈대떡도 별로 나아지지 않아서 적이 실망했다.
아주 작은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시야를 넓혀 주위를 살펴보면 잘못된 일이나 고쳐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도 고쳐지지 않는 것은 누군가 나서서 하겠지, 아니면 이미지 관리상 가만히 있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에 그냥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네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아!”라고.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 해도 머뭇거리게 된다. 굳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사회 구성원 하나하나가 깨어 있고 누군가의 작은 노력과 변화의 움직임이 이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꾼다.
“내가 오늘 죽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세상은 바뀐다.” 2,300여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바꾸려는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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