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포그
- 강성은

런던포그는 아버지가 입던 양복의 이름
지금은 사라져버린
안개처럼 사라져버린
아버지와 양복
어느 날은 겨울 나뭇가지 끝에
걸려 있고
어느 날은 비에 젖은 채로 중얼거리고
눈 내리는 밤 창문을 톡톡 두드리고
텅 빈 가을을 가로지르고
텅 빈 가을을 가로지르고
시시각각 형체를 바꾸며
나타났다 사라지고
몇 세기 동안 녹지 않는 눈사람이 되어
겨울이 되면 다시 그 집 앞에 서있다
고향이 없는 자가 그리워하는 고향처럼
지금은 사라져버린
안개처럼 사라져버린

-『단지 조금 이상한』강성은시집
문학과지성사 / 2013
1942년 만들어진 영화 <카사블랑카>에는 안개 자욱한 공항에서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드만의 이별 장면이 나온다. “당신의 눈동자를 위해 건배!”라는 유명한 대사와 함께 험프리 보가트가 입고 있는 트렌치 코트가 바로 런던포그사의 옷이다. 우리나라에는 1980년부터 삼성물산에서 처음 출시되었다. 시의 화자의 아버지가 입던 옷이 그것이었고, 그 옷의 이미지를 눈사람과 연결해서 (아버지에 대한)그리움을 형상화했다. 읽다보면 단순히 아버지에 대한 그리
움 만은 아니다. 이 시는 모든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이별의 건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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