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빠는 꽃이 있다

꽃에 목덜미를 물린 사람은
해를 넘지 못하고 이듬해 꽃이 되었다

입술 안에 입술이 난
사람을 먹어치우는 꽃이다
입술을 활짝 열고 신발만 내뱉는
이 꽃의 서식지는 사랑이다

발목을 무는 꽃이 있다

땅을 기어 다니는 이 꽃은
혓바닥이 갈라져 말이 오락가락 한다

이 꽃에 물리면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몸속에 한번 꽃의 피가 섞이면
절룩거리며
꿈에서 꿈으로 옮겨 다녀야 한다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중에서 박지웅 시집/문예중앙시선/2016
문학에서는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사실처럼 하는 뻔한 속임수가 있다. 이야기하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그것이 거짓말임을 다 안다. 그러나 그 거짓말 속에서 진실이 드러날 때 우리는 기꺼이 그 거짓말에 감동하게 된다. 수학에서 증명은 그것이 옳다는 증명도 있지만 그것과 반대되는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 꽃이 있는지 몰라도물리면 꽃이 되는 꽃이 있다면, 꿈에서 꿈으로 옮겨 다니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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