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이 횡행하는 사회는 혼란스럽고 그것을 바라보는 소시민은 힘들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과 이 사회를 지키려는 순수한 열정이 봄을 노래한다.

새해를 시작하며 ‘건강 하라, 좋은 일만 있어라’ 서로 덕담을 주고받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송년 모임으로 분주한 가운데 지난 1년을 되돌

아보게 하는 연말이다. 한 장 남은 달력의 가벼움이 지난(至難)한 삶의 무게에 슬쩍 얹혀진 12월. 대한민국의 12월은 촛불에 뜨겁고 거짓말에 낯 뜨겁다.
살다보면 거짓말, 거짓행동 한 번 안하고 살기는 힘들다. 살아가면서 내가 만든 거짓 언행들이 자신을 부끄럽게 하고 혼자 겸연쩍어 쓴웃음 짓게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낯 뜨거운 짓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가을운동회 때였다. 운동회는 달리기, 멀리뛰기 등 개인 종목과 단체 종목으로 기마전(騎馬戰), 텀블링(tumbling : 당시에는 ‘덤블링’이라 하였다)이 있었다. 대개 5, 6학년 남자 아이들로 구성하였는데 텀블링은 요즘으로 말하면 기예단의 초보 수준 정도의 매스게임으로 약간의 민첩성과 기술이 필요하여 테스트를 거쳐 선발 하였다.
여름방학이 끝나면 학교는 운동회 준비로 분주했고 우리들은 12월에 있을 중학교 시험으로 긴장했다. 이런 가운데 담임선생님은 공부시간 뺏긴다고 우리들에게 텀블링 테스트에 불합격하도록 작전(?)을 지시하셨다. 테스트는 물구나무 서기였는데 혼자 서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발목을 잡아 주는 것이라서 약간의 운동신경만 있으면 절대 불합격 할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아니 약속한 대로 개구리처럼 엎드려서 두 다리를 폴짝 뛰다가 이내 넘어지곤 했다. 테스트는 나의 4, 5학년 담임 이셨던 ‘ㅈ’ 선생님이 하셨는데 나는 그 선생님이 그렇게 화를 내신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잘 뛰놀고 약삭빨랐던 우리들 대다수가 단체로 연극을 하니 기가 막히셨을 게다. 우리들은 몽둥이로 엉덩이를 호되게 맞는 것으로 불합격을 인정받아 어린 시절 마지막 텀블링을 그렇게 불명예스럽게 끝냈다.
나는 초등학생으로는 가장 장거리 종목인 1,500m 학교 대표선수였는데 그렇게까지 거짓을 연출하여 불합격한 것에 대해 4, 5학년 때 나를 사랑해 주신 선생님을 우롱한 것 같아서 어린 마음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어언 50년 전의 일이다.
누구나 한 두 번은 거짓말을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진실을 말한다. 한 마디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거짓을 준비 하느니 차라리 진실을 말하는 것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 선의의 거짓말도 있지만 거짓말은 대부분 일종의 위기의식이나 자기합리화 그리고 거짓말로 얻어지는 보상을 기대하는 데서 비롯된다. 또 거짓말이 버릇되면 나중에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본인조차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을 못하게 되어 스스로 ‘거짓말 자판기’가 되는 불행을 초래한다.
거짓이 횡행하는 사회는 혼란스럽고 그것을 바라보는 소시민은 힘들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과 이 사회를 지키려는 순수한 열정이 봄을 노래한다.
봄이 일어서니/ 내 마음도/ 기쁘게 일어서야지/ 나도 어서/ 희망이 되어야지//누군가에 다가가/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그렇구나/ 그렇구나/ 마음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
이해인 수녀님의「봄 일기」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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