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하야 평화시위
대중이 하나되는 노래의 힘
공자도 예악을 동일 시
우리를 하나로 묶는
‘건축사 찬가’ 필요해

요즈음 박대통령의 하야 요구를 위한 토요일 저녁 광화문 집회가 3주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 주에는 200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단 한명의 체포자도 없는 평화집회로 마무리되었다. 이를 두고 전 세계 언론은 집회 시위 문화에 새장을 열었다고 찬탄하고 있다. 국내 매스컴들도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한국인들의 성숙함을 꼽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좀 더 파고들면 그 속에 노래의 힘이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시위집회의 특징은 아이돌 가수부터 양희은 같은 원로가수까지 등장하여 모두가 공감하는 노래를 불렀고, 군중들은 합창으로 하나가 되는 응집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유가에서는 예(禮)와 악(樂)을 하나로 규정하였다. 묵자 같은 사람은 악의 무용 내지 폐해를 주장하기도 하였지만 이는 편협된 생각으로 예를 완성시키는데 악은 필수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사서오경의 예기 편에 악기가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음악이 사람의 감정을 순화시키고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누구나 경험하였을 것이다.
3년 전 북한에서 열린 아시아 역도대회에서 태극기와 함께 애국가가 평양에 울려 퍼졌을 때, 박인비가 리우올림픽 골프에서 금메달을 따고 애국가를 연주할 때 감독인 박세리와 함께 흘린 눈물, 피겨 불모지에서 김연아의 금메달과 애국가 등 대부분의 눈물과 감격은 스포츠와 관련이 있다.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 전국고교대항 야구대회는 해당 동문들이 하나가 되는 행사였다. 4강전쯤 되면 평일인데도 넥타이 부대가 스탠드를 메웠고 자기네 학교의 응원가와 교가가 쩌렁쩌렁 경기장을 울렸다. 이런 현상은 프로야구에서 개개인 선수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종교에서 두드러진다. 기독교에서 찬송은 하느님에 대한 것이 기본이지만 신도의 결속을 가져온다. 이렇듯 노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 준다. 이것이 바로 음악의 위대성이다.
금번 대한민국건축사대회는 인천에서 열렸다.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300만 웅도의 단면을 보게 되어서 기쁘고, 불철주야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과 성을 다해준 인천건축사회에 감사를 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에서 올라온 회원들은 칭찬보다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개막식은 임원들만의 것이었고, 회원들은 짜장면 한그릇 먹어본 것 외에 한 것이 없었다고 혹평하고 있다. 왜 이런 불평이 나오는가? 근본적으로 대회는 건축영화제, 산업대전, 문화대상 등이 함께 한 도시 안에서 열려야 한다. 그래야 건축사대회 이후에도 낮에는 전시회를 관람하고 밤에는 영화를 보며, 동문의 밤, 시도대항 장기자랑, 교육 등 이틀 사흘을 바쁘고 보람있게 보내야 한다. 미처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야 한다. 그리 하려면 이를 수용할 공간을 가진 곳이어야 하니 당연히 서울일 것이다. 그런데 지방순회를 하다 보니 당일치기 행사가 되어 많은 회원들의 원성을 듣게 되는 것이다. 지방순회의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이번 행사에도 퓨전국악이 등장하고 행운권 추첨과 시도 노래자랑이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위에 열거한 애국가나 응원가처럼 우리를 하나로 만들지 못하였다. 만약 이런 때 ‘건축사찬가’나 ‘대한건축사 협회가’가 있어 제창을 하였다면 어땠을까? 그 순간 우리는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건축사에 관한 노래는 두곡이 전해지고 있으며, 우남용 회장때는 가사 모집도 있었다. 모두가 하나될 수 있는 노래 한 곡쯤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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