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시작은 인간이 하고 그 관계의 완성은 신이 개입하여 인연은 결국 인간과 신의 합작품이 아닐까?

여름 더위로 미뤄 왔던 휴가였는데 아내와 함께 울릉도에 다녀왔다. 아침 8시에 출항하는 배를 타려고 하루 전 묵호항 인근 펜션에서 잤다. 울릉도에서 2박 3일은 다소 빠듯한 일정이라 도착 하자마자 펜션에 짐을 풀고 작은 배낭에 물과 약간의 간식을 챙겨 ‘행남해안산책로’를 걸었다. 날씨가 쾌청하여 푸른바다는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가끔 쉬면서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스케치북을 펼치면 내 눈길이 머무는 풍경 하나하나가 작은 스케치북에 들어와 앉았다.
둘째 날은 노선버스를 이용했는데 그 지역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다음 버스가 오기 전까지는 누구 눈치도 안 보는 자유가 있어 좋았다. 어제와 달리 날씨가 흐리고 바람도 거세었지만 버스가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끝인 ‘관음도’까지 갔다. 입구에서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70대 노년의 부부가 먼저 말을 건네 길래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이내 헤어졌다. 저녁에 선박회사로부터 내일 1시 출항 예정인 여객선은 풍랑주의보로 인해 오후 4시로 늦춰졌다는 문자가 왔다. 다음날 아침 어제 잠깐 인사를 나눴던 노부부를 다시 만났다. 그들은 오전 배로 포항으로 가야하는데 배가 결항하여 하루 더 묵어야 한단다. 이렇게 다시 만난 우리들은 같이 다니기도 하고 점심도 같이 먹었지만 그날 하루 만남과 작별인사를 몇 번이나 하다가 결국 우리부부와 함께 묵호로 나가서 내일 하동 집으로 가기로 했다. 묵호에 도착하여 내가 묵었던 펜션에 가니 그들도 같은 날 이 펜션 우리 옆방에서 자고 울릉도에 왔다는 것이다. 우연치고는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일이 있어서 먼저 떠난다는 말을 펜션 주인에게 맡겨 놓고 그들은 이미 떠났다.
이름도 전화번호도 서로 모르는, 서로에 대한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막상 떠나고 나니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은 이렇게 바람처럼 표표(飄飄)한 것인지도 모른다.
살다보면 이런 인연 혹은 우연한 일들이 수시로 생긴다. 20여 년 전 충북건축사회 사무처에 들렀다가 우연히 회장님과 마주치게 되어 「시민건축대학」추진위원장을 맡을 때는 후일 도(道)건축사회 간사, 감사, 회장까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때 회장님과 조우하지 않았다면, 사무처에 하루만 늦게 갔었더라면? 기욤 뮈소의 소설 「구해줘」에 이런 말이 나온다. ‘어쩌면 결국 완전한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치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벌어지고 마는 사건도 있으니까.’ 인연은 맺고 싶다고 맺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고 뗀다고 해서 뗄 수도 없다지만 인연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인연은 신의 영역인가, 인간의 영역인가에 대해서 가끔 논쟁도 있지만 모든 것이 우연이라면 우리 인생은 무의미할 것이고 모든 것이 인연이라면 우리의 자유의지는 작동이 안 되어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관계의 시작은 인간이 하고 그 관계의 완성은 신이 개입하여 인연은 결국 인간과 신의 합작품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나의 관심과 열정이 자칫 우연으로 끝날 일을 필연 혹은 운명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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