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혁

나는 이야기 속에서 사랑한다. 좋았다고 말하거나 좋은 것에 관해 말하거나. 나는 이야기 속에서 시작한다. 어제 꿈이 그랬다, 오늘 예감이 이랬다, 머릿속에서 우리에게 허다한 행운이 따랐다. 쏟아지는 이야기의 기쁨이 여름의 나무를 높였다, 겨울의 새를 낮추었다, 겨우 언덕을 오른 우리에게 하늘이 좁아지고 있었다. 겨우 숲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한 이야기가 끝나갈 때. 참을 수 있다고 말하거나 참을 수 있는 것에 관해 말하거나. 다시 이야기 속에서 시작한다. 꿈이 예감을 이끌었다, 웃음이 숲을 흔들었다, 납작해진 언덕에서 돌아오는 동안 우리는 허다한 행복을 겪었다. 모두 한 번에 쏟아진 시간이었다.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의 기쁨이 넘치고 있었다.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김상혁 시집/문학동네 시인선/2016

이 시는 문장부호에 주목해서 읽어야 한다. 쉼표와 마침표가 어떻게 쓰이는지 유의해야 한다. 문장부호가 이 시의 구조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야기 속에서 사랑한다.”는 첫 문장은 “겨우 숲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한 이야기가 끝나갈 때.”라는 문장 속에서 풀어지면서 다시
시작한다. 그 이후로 이어지는 쉼표가 그 것을 드러낸다. “어제 꿈이 그랬다, 오늘 예감이 이랬다,”는 종결형 어미로 끝나지만 쉼표로 연결된다. 그 다음에 오는 “꿈이 예감을 이끌었다, 웃음이 숲을 흔들었다.”도 역시 종결형 어미를 쉼표로 이어 간다. 쉼표와 마침표, 문장의 구조가 그 것과 맞물리면서 이 시는 문장을 넘어서야 비로소 한 문장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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