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역사비교는 부적합
역사는 기록 평가가 임무
편집위원조차 다른 두 권의 협회 50년사
어느 것이 정본인가?

요즈음 국민들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분노와 허탈감이 극에 달해있다.
매스컴들은 희대의 사건을 전하면서, 해설이나 칼럼을 통해 역사를 통한 사례를 찾고 있는바, 서양에서는 러시아를 망하게 한 요승 라스푸틴에 비유하고 한국에서는 고려 공민왕 때의 신돈을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직업과 전력상으로는 정확한 사례가 아닌듯하다.
라스푸틴은 황실의 신임을 받아 매관매직을 일삼음으로써 러시아가 멸망하게 된 원인을 제공하였지만 최면술을 주로 하는 종파의 승려였고 제정 러시아의 황태자를 낫게 하고, 그의 죽음과 황실의 몰락을 예언하여 적중하였다. 공식 직함이 없이 뒤에서 권력을 휘두른 것은 같지만 최태민처럼 불교, 천주교, 기독교를 떠돌고 스스로 목사라 칭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신돈 또한 공민왕의 사부라는 제도권 밑에서 일하다 몰락한 경우이니 뒤에 숨어서 영향력을 행사한 최씨 일가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사실, 기독교나 불교 같은 세계가 공인하는 종교가 아닌 무당이나 점성술사 같은 자가 신임을 얻은 경우는 꽤 있다. 구한말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는 충주 친정으로 피란했는데 환궁날짜를 맞춘 무당에게 진령군을 봉작하여 권력을 휘두르게 하였다. 선진국인 미국의 레이건대통령이 피격당한 후 영부인은 조앤 퀴글리란 점성술사에게 의지하여 대통령의 기자회견 날짜나 출장 날짜를 잡았었다. 그러나 최태민의 경우 일제 하 순사부터 시작해 불교, 천주교, 기독교를 망라하고 스스로 ‘태자’라 일컫고, 저격으로 어머니를 잃은 영애의 허탈한 마음을 꿈 이야기로 파고 든 것을 보면, 희대의 사기꾼임을 알 수 있다. 그 피가 대통령이 된 영애를 계속 사로잡아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역사가 강력한 힘을 갖는 까닭은 “미래에 대한 최선의 예언자가 과거”이기 때문이다. 예언이 들어맞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의 주체적인 사관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즉 역사가는 “기록하는 것이 임무가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 임무”인 것이다. 일찍이 사마천은 냉정한 이성과 예민한 감성으로 ‘사기(史記)’에서 성패에 대한 원인분석과 도덕적인 논찬(論贊)을 하였고, 삼국사기(三國史記)도 김부식이 뚜렷한 역사관을 가지고 기술하였다. 전자는 개인의 자유로운 저술이니 당연하지만 후자는 왕명에 의하여 여러 사람이 편찬한 것인데도 우두머리의 주관적 평가가 들어가 있다. 그렇기에 정치가들은 물론 여러 사람들의 애독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건축사협회는 금년에 51돌이 되었다. 그런데 50년사는 49년째 나왔고, 52년이 되는 내년에는 새로운 50년사가 나온다고 한다. 출발부터 문제가 있어 반대했던 50년사이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다시 만든단다. 50년사의 완성은 기존의 ‘50년사’에 모자란 1년을 채우면 될 것이다. 그러나 집행부는 몇몇 회원들이 안 좋다고 하여 다시 만든다고 설명하고 있다.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이나 건축사지의 편집책임을 맡아보지 않은 분을 위원장으로 위임하여 막대한 예산을 세울 모양이다. 한 단체에서 두 개의 50년사가 만들어진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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