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의 역사는 길고 깊다
김영란법은 의식혁명의 계기
협회의 대관 관계 새로 정립하고 예산편성도 바뀌어야
협회 회원 법 저촉 유념해야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속칭 김영란법이 9월28일 발효되었다. 매스컴들은 이 법 시행으로 인해 바뀐 세상을 너 나 없이 크게 전하고 있다. 현직 검사의 결혼식장에 놓인 화환이 네 개라든지, 주말 골프장의 텅 빈 주차장 모습이 격세지감을 갖게 한다.
이 법 시행을 전후하여 잘 팔리는 책이 미국 연방법원 판사였던 존 누난과 임용한 등이 쓴 동명의 책 「뇌물의 역사」이다. 이 책들은, 뇌물이 계급사회가 형성되면서 관료 정치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즉 3,500년 전 이집트에도 뇌물로 인해 골치를 썩였다는 기록과 성경에도 뇌물로 인하여 재판의 공정성이 훼손됨을 밝히고 있다.
조선시대 우리는 중국에 갈 때는 황제의 빠른 알현을 위해, 그들이 사신으로 오면 횡포를 방지하기 위해 공식적인 뇌물을 바쳐야 하는 슬픈 역사도 가지고 있다. 뇌물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을 위한 외교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뇌물의 역사는 인류의 가장 오랜 직업 중 하나인 매음의 역사와 같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도 뇌물 이야기는 부지기수이다. 멀리는 신라 김춘추가 고구려에 갇혔을 때 뇌물로 귀국할 수 있었던 것부터 조선시대로 이어진다. 집현전 학자였던 정인지는 세조반정으로 영의정이 된 후 장안 4대부호가 될 만큼 뇌물을 챙겼고, 당쟁의 소용돌이는 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비자금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매관매직으로 확대되고 조선조는 망조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그 중 윤원형의 애첩 정난정의 치마 폭 뇌물은 또 다른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제도의 미비에서 발생된 것은 아니었다.
조선조 법전인 경제육전(經濟六典)은 뇌물금지 조항이 있고, 이에 더하여 세종은 뇌물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 모두를 처벌하는 양자처벌법을 만들었다. 이로 인하여 청백리로 추앙받는 황희 정승도 문제가 되었다. 최근만 해도 옷 로비 사건부터 성 접대사건 판검사들의 주식, 차량, 현금의 수수 등 온갖 비리가 김영란법 시행 전에 터지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2016년 9월 28일이 한국인의 의식을 바꾸는 정신적 혁명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한다. 사실 한국인은 정情에 약한 정의 문화 속에 살았다. 이젠 이런 감성을 탈피해 이성적인 삶을 살아야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협회도 정부위탁업무 및 신문발행 등으로 이 법의 저촉을 받게 되고 건축사들도 특검 등에서 공무수행사인이 된다.
집행부나 개개인 건축사나 대관 접촉이 많은 만큼 매사에 돌다리도 두들기는 심정으로 처신해야할 것이다. 특히 집행부는 국토부 등과 면담 등을 통한 교류를 활발히 하고, 정치권과도 정치후원금 등 제도권을 이용하여 하자가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내년도 예산편성도 이에 맞춰 판공비나 법제도개선비를 축소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회원끼리 나누는 정표까지 위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법 안에서 뇌물과 선물 사이를 구분할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