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국

커피점에 온 모녀가
커피가 나오자 기도를 한다
나는 보던 책을 내려놓았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기도는 길어지고
딸이 살그머니 눈을 떠 엄마를 살피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하느님도 따뜻한 커피를
좋아하실 텐데……

-『달은 아직 그 달이다』 김소연 시집 중에서/창비/2016
공간으로 다가오는 시가 있고, 장소로 다가오는 시가 있다. 공간으로 다가오는 시는 이야기 보다는 언어의 교직, 형태소들의 낯 선 배치들을 통해 세계와 인간에 대해 말하거나, 보여준다. 그러나 장소로 다가오는 시들은 반드시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거기에 시간의 흐름이 있고, 시도 그 흐름을 타고 진행된다는 얘기다. 공간으로 다가오는 시보다 장소로 다가오는 시가 훨씬 이해하기 쉽다. 시간 때문이다. 시간은 우리에게 그럴 수 있을 것이란 개연성을 준다. 그 개연성 속에서 살짝 들어 올려지는 다른
얘기. 하느님도 따뜻한 커피를 좋아할 것이란 얘기. 그건 사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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