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학공업 육성을 기치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던 1960년대 최고 인기학과는 화학공학과였다. 1970년대에는 중동건설 붐과 해상물류 바람이 불면서 조선공학과, 기계·건축공학과가 선두권이었다. IT산업이 태동하던 1980년대는 전기·전자공학과가 정상에 올랐고, 10년 뒤 1990년대엔 컴퓨터공학이, 의예과는 200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커트라인 1위다.
13년 전 스웨덴 말뫼의 크레인을 1달러 주고 실어와 세계1위에 올랐던 조선산업은 ‘울산의 눈물’이 되고 말았다. 향후 10∼20년 후 미국 일자리 가운데 47%가 자동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빅데이터 정보분석, 인공지능과 센서, 3D 프린터, 드론, 사물인터넷(IoT)등 기술혁신은 상전벽해처럼 전개되고 있다. 얼마 전 세기의 관심을 모았던 알파고는 계산능력이 10의 360승이나 된다고 하니 인간으로 하여금 계산이 가능한 곳에서 감히 손을 떼라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사라지지 않을 직업이 무엇이 있을까?
2015년도 옥스퍼드대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매우 창의적”으로 분류되는 직업은 살아남는다고 한다. 놀랍게도 대표적으로 건축사, 웹디자이너, IT전문가를 꼽는다. 첨단 기기에 의한 자동화는 비극이 아닌 축복이라고 한다. 우리 인간은 기기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창조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예로 인터넷 뱅킹도 그런 경우다. 인터넷 뱅킹 기술이 처음 나오고 나서 금융업계가 이를 채택하는데 10년이나 걸렸다. 산업리스크나 보안이슈 때문에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주저한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인터넷뱅킹이 금융계에 채택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오늘날 모든 금융거래의 80%이상이 인터넷 채널에서 발생한다. 이제 은행창구 방문은 진부한 일이 되었고, 은행지점의 존재 의의도 희석되어 버렸다.
건축사는 ‘국가공인건축가’임과 동시에 ‘국가공인전문직’이다. 우리는 건축주에게 믿을 만큼의 전문적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그에 상응하는 수수료나 비용을 받는다. 이러한 대가를 양심적으로 받으려면 건축사 자신보다 건축주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덕목을 지녀야 한다. Fiduciary Duty (윤리적 의무)를 직업윤리의 철칙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그 무엇보다도 우선해야하고 국민의 신뢰를 먹고 살아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종종 우리의 건축주가 누구인지, 건축사라는 직업의 덕목이 무엇인지 혼동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기본 덕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우리끼리도 혼탁해지고 대국민적 신뢰는 한없이 추락하게 된다. 우리는 그동안 소통과 화합, 변화와 혁신을 마치 관행어처럼 수도 없이 외쳐왔다. 모바일, 스마트폰, SNS 등 인류가 이 지구의 땅에 발을 내디딘 후 가장 혁신적으로 소통수단이 확보된 환경임에도 나라와 사회, 가정과 직장 등 모든 분야에서 ‘소통’이 화두인 것도 서로간 신뢰와 정직함이 결여되어있는 피상적 관계였기 때문이다. 우리들 건축사가 국가공인 건축가로서 대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Fiduciary Duty (윤리적 의무)에 대해 보다 더 철저히 인식하고 이를 지켜내도록 해야 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대한건축사협회도 협회 창립 이래 50년 만에 모두가 염원하던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배출한 천지의 기운을 타고 초일류 협회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전회원들의 ‘윤리적 의무’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건축사 직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자신들의 최우선 의무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반복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진정한 의미의 회원으로부터 신망 받는,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1만 여 회원을 아우르는 자랑스러운 협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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