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칭찬에 인색해도 자식에게 거는 기대와 희망
그리고 사랑은 무언의 말 그 이상으로 크게 다가온다

5월은‘어버이 날’이 있는 달이다. 이제는 어버이가 되어 보니 어버이날에 느끼는 감회도 다르다. 나의 어린 시절, 누구나 그러했듯이 자식들은 아버지를 어려워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버지께서 방에 들어오시면 슬그머니 나가 밖에서 놀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집에서 아버지는 존중은 받았지만 외로운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아버지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 기억은 희미하지만 아버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에피소드는 몇 가지 있다.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었던 60년대,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부모님과 상의하여 지원할 중학교를 적어 내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놀랍게도 ‘경기중학교’라고 써 주셨다. 인구 7만명 정도의 충주시 변두리, 한 학년 두 반뿐인 작은 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고 해 보았자 우리나라 최고 명문인 경기중학교를 지원한다는 것은 애당초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난감한 마음으로 그냥 제출했는데 결국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그 날 종례(終禮) 시간에 선생님은 우리들이 제출한 지망 학교를 언급하시면서 “글쎄 우리 반에 경기중학교를 적어 낸 사람이 있다.” 순간 교실은 웅성거렸고 황당한 그 주인공이 누구일까 하여 반 친구들은 두리번거리며 그럴만한 범인(?)을 잡으려고 나를 포함한 몇몇 아이들의 얼굴을 몇 번이고 훑고 지나갔다. 나는 아닌 척 시치미를 떼고 있는데 선생님의 다음 말씀이 나를 더 궁지로 몰아넣었다. “자기 분수도 모르고 경기중학교라니!” 어린 나이였지만 나름 자존심이 있는 터라 얼굴이 화끈거리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실력이 안 된다 해도 격려 좀 해 주시면 안 되나!) 비록 그것이 아버지의 욕심이었을 지라도 나는 그 사건 이후 아버지의 바람을 읽을 수 있었고 자식을 그렇게까지 높게 평가해 주시는 것에 고맙기도 했지만 어깨는 무거웠다. 나의 태만으로 그 학교에 지원해 보지도 못하고 해프닝으로 끝난 그 날의 사건은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과 아쉬움으로 이제껏 남아있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건축사’에 관한 것이다. 이른 나이에 건축사시험에 합격해 아버지께 우선 먼저 알려드렸으나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그리 대단한 일로 생각하시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기야 우등상을 받아 왔어도 잘 했다는 칭찬 한 번 못 들었으니 그리 서운해 할 일도 아니었다. 그 후 고향 집에서 형제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설계사무소 과장으로 승진한 것을 우연히 알게 된 바로 위 형수가 “아버님, 넷째 삼촌이 과장이 되었어요”하는 것이 아닌가. 누구나 하는 승진인데 뭐 그것이 대단한 것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식사 때 종종 반주를 하시는 아버지께서 느닷없이 “과장(課長) 술 한 번 받아보자!”하는 것이었다. 당황하여 얼결에 술잔을 올렸지만 그 후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었다. (‘건축사’가 설계사무소 과장만도 못한가!) 왜 그러셨는지 이제는 알 길이 없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아버지의 또 다른 면을 보는 것 같아서 쓴 웃음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니 부모는 칭찬에 인색해도 자식에게 거는 기대와 희망, 그리고 사랑은 무언의 말 그 이상으로 크게 다가온다. 홀로 되신 96세의 어머니는 요즘 식사를 못하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사람들은 장수하시는 것이라지만 나는 곧 있을 ‘이별’을 생각하니 그저 가슴이 먹먹하다. 그것이 자식의 마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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