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여기저기 힘들다고 아우성이고 우리 건축계도 여기에 질세라 힘든 나날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중 그래도 상위 10%는 회원들의 어려움 속에서 굳건하게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고 있다. 건축사들과의 모임에서 회원들을 만나면 “요즘 어떻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기가 민망하며 혹 서먹한 인사말에 내 귀를 스쳐가는 말들은 “일이 있습니까.” “그저 그렇죠.” 하는 소리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긴 한숨과 함께 무엇을 하여야 할까. 우리의 업무영역의 확대방안은 없을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살기위한 몸부림 속에 회원단합은 더욱 안 되고 덤핑의 속도는 가히 상상도 못할 정도인데 결국 우리는 당장의 적은 이익 때문에 모두들 기름을 붓고 불속에 들어가는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몇 달 전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건설회사 사장님이 설계의뢰가 있었다. 기존공장 허가가 나있는 것을 건축주 사정으로 창고로 설계변경을 해달라고...

그래서 공장설계비는 다 지불했느냐는 물음과 함께 이름도 모른 그 건축사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정중히 거절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 몇 일전 다른 설계건으로 의논을 하던 중 “창고 다지었습니까?”라고 물으니 며칠 있으면 준공한다는 말과 함께 건축사에게 전에 공장 설계비를 완불하고 변경 설계비까지 건설회사 사장님의 압력(?)으로 다 지불했다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난 참으로 흐뭇했다. 만약 창고를 그냥 수주했으면 이 건축사는 공장이 지어지지 않는다는 변명아래 설계비를 다 못 받았을 것이며 그냥 세월만 보냈을 것이 아닌가.

나 자신의 적은 이익에만 국한하지 말고 더 넓은 세상을 보자. 당장 허기가 져 내 배가 고파도 나중에 우리 모두가 다 함께 누려야할 행복의 들판이 내 등 뒤에 버티고 있지 않은가.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계획 설계비 문제도 좀 집고 넘어가고자 한다. 건축주가 사무실에 계획을 의뢰하면 아무런 대가없이 심지어 패널에 모형까지 선사하는 일부 건축사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건축사는 정중히 계획 설계비를 요구한다. 이 의뢰자는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간다. 사업을 구상하는 이가 막대한 사업비가 들어가는 사업에 가장 중요한 검토과정을 날로 먹으려고 한다.

누가 가훈으로 적은 글이다 “날로 먹을 수 있는 것은 회밖에 없다”고...

사무실을 빠져나간 이 의뢰자는 두 번 다시 계획비를 요구한 사무실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무실을 기웃거린다. 공짜라는데 너무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정말 프로젝트를 수행할 사람이라면 정정당당하게 계획 설계비를 지불하고 일을 맡길 것이라고 믿는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여러 개의 계획안을 들고 사기꾼처럼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제 우리 좀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캠페인을 하여서라도 건축사들의 마음가짐을 바뀌어야 한다. 어렵다고 움츠리지 말고 적은 이익에 눈멀지 말며 어려움을 함께 한 동반자로서 이 차디찬 마음의 겨울을 보내면 초록빛 물감이 가슴속 가득 찬 내일의 봄을 맞이할 것이다.

법구경에 이런 글이 있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는다” 우리 중에서 한명이라도 녹이 되면 어느새 모두가 녹이 되어 소멸되어 흔적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건축사의 권익과 생존을 위해 녹이 생기지 않게 노력하며, 그 쓸모없는 녹을 통하여 인생을 배우고 나 자신을 닦고 내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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