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살고 싶다.
내 앞모습이 나의 일부이듯
내 뒷모습 또한 나의 일부이다.

이제 양력으로나 음력으로나 명실상부한 원숭이 해 2016년이다.
사람들은 해가 바뀌면 연하장을 보내거나 덕담을 주고받으며 한 해를 시작한다. 그러나 요즘은 연하장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SNS(Social Network Service) 상에서 덕담을 주고받는 세상이 되었다.
나도 스마트폰으로 바꾼 몇 년 전부터 새해나 추석에 스마트폰의 전자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인사말을 곁들여 알고 지내는 분들께 보내곤 했다. 그러나 올 해는 보내지 않았다.
지난 해 추석을 맞아 간단한 그림을 그려 몇몇 분들께 스마트폰으로 보냈다. 며칠 후 그중 한 사람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그림이 괜찮아서 내 그림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양해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통보였다. 나는 아무런 답도 보내지 않았다.
내 그림이 다른 사람의 것이 되어 SNS상에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니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SNS의 여러 형태 중 미니홈피나 페이스북 등은 아직 할 엄두도 못 내고있다. 카카오톡을 먼저 했고 망설이다가 몇 개월 후 카카오스토리를 개설하여 약간의 글과 사진을 올렸으나 비공개로하였다. 그 이유는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나 사진, 그림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한다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였다.
단체 카카오톡이나 밴드는 어쩔 수 없이 몇 군데 가입해서 잠깐 들어갔다가 대충 훑어보고 금방 나오는 정도이다. 그런데 점점 이런 것에 회의를 느낀다. 수시로 올라오는 퍼온 글, 동영상에 더해서 해외여행이나 가족사진, 정치적인 내용까지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이다.
좋은 정보를 알려 주어 고맙기는 하지만 때로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좋은 글이나 그림이라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명절에 인사차 보내는 그림이라도 조심스러워져 올해는 보내지 못했다.
현실에서의 고단한 삶 이상으로 SNS속의 세상도 복잡하다. 자기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자 하는 방어 본능, 내 삶을 누구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는 노출 본능, 남의 생(生)을 엿보고 싶어 하는 관음증(觀淫症)이 서로 얽혀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약 3억장 이상의 셀카 사진이 SNS에 올라온다고 한다. 사진을 올리는 사람, 올린 사진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마음이 제각기 다르겠으나 사람이 타인으로부터 관심 받고, 사랑받고 싶은 것은 어쩌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타인의 시선에 자유롭지 않게 되었다. 내글 하나, 내 사진 하나에 수 십 개의 댓글이 달리고 동조자가 생겨 ‘남이 나를 알아준다’는 마력에 빠져 자칫 자기의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온전한 ‘나’로 살 수는 없을까?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살고 싶다. 내 앞모습이 나의 일부이듯 내 뒷모습 또한 나의 일부이다. SNS에 올라오는 사진도 결국 그 사람 삶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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