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수명한 청풍명월의 고장, 충청북도 보은군에는 세속에서 벗어난(俗蘺) 곳에 법이 안주해 있는 법주사(法住寺)가 있다. 법주사는 의신(義信)이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창건하였는데, 법(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脫俗)의 절이라 하여 법주사(法住寺)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
다. 경내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5층 목탑인 국보55호인 팔상전을 비롯하여 쌍사자석등, 석련지, 사천왕석등, 마애여래의상 등의 국보와 보물을 비롯하여 세존사리탑 법주사사천왕문, 순조대왕태실 등의 지방문화재가 있다.
회장이 되어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좋아하는 산을 찾아가는 호사를 누리려 집을 나섰다.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 할 생각에 들떠 말티재로 향하였다. 말티재는 법주사를 찾는 첫 번째 관문이다. 요즈음은 새로운 길이 여럿 생겼지만, 말티재 입구에서 지도교수님과의 추억을 생각해 본다. 법주사 일주문은 바로 이곳 말티재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일주문(一住門)은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곳이기도 하다. 긴 말티재를 걸어 올라가면서 번뇌와 갈등을 내려놓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을 넘어서면 정이품송이 우리를 반겨준다. 웅장하고 화려했던 과거의 영화를 뒤로하고 힘겹고 초라하게 서있는 모습이 요즘의 우리 건축사들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마저 들었다. 정이품송을 지나 맞이하게 되는 곳이 오리숲이다. 2km에 펼쳐진 숲길이 사계절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마침 내리기 시작한 가을비에 젖은 단풍이 보다 화려하게 나를 반겨주는 것 같다. 오리숲을 조금 걸어 들어 가려는데, 앞에 힘겹게 걸어가시는 할머니 한 분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할머니께 여쭈었다. 할머니 어디 가세요? 큰절(법주사)에 가신다고 말씀하시기에, 날씨도 좋지 않은데 하필 오늘 같은 날 가시느냐고 여쭙고 힘겹게 등에 메신 짐을 들어 드린다고
하니 한사코 마다하셨다. 비가 내리는 평일이라 오리숲은 한적했다. 할머니와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보니 법주사가 눈 앞에 나타나 있었다. 나도 합장예배 후 법주사로 향하였다. 할머니는 대웅전으로 들어간 즉시 등에 메고 온 짐을 풀어 부처님께 바치고 젊은 사람도 하기 어려운 108배를 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할머니의 절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저 분은 연세도 있으신데 무얼 그리 간절히 빌고 계실까? 궁금해 잠시 후 여쭤보니, 내가 이 나이에 뭘 바라겠나? 주변 가족들이지... 순간 부끄럽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누구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 보았던가? 모든 갈등의 원인은 우리가 아닌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가?
한참을 아무 말 없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대한건축사협회가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했다. 축하하고, 축하받을 일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건축사가 대한민국의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전문가인가? 대한건축사협회는 회원들로부터 신뢰받는 단체인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의 100년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현재의 모든 갈등과 분열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 내부에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통렬한 자기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건축사가 힘겹게 108배 하시는 할머니 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겠나 간절히 기도해 본다. 청동미륵대불의 온화한 미소가 우리 건축사들에게 널리 퍼져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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