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행위에 대해
주위에서 관대하면
그 행위는 정당화 된다
화가 나세요?
그렇다면 화를 내세요

 

저녁을 먹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고성이 오가며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나가 보니 11층 남자와 10층 남자가 층간소음 문제로 다투고 있었다. 양쪽 부인들도 팔짱을 끼고 남편의 언쟁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 자못 심각하다. 오가는 말을 들어보니 11층의 손자가 주말에 가끔 오는데 뛰어 다녔던 모양이다. 11층 사람은 ‘누가 경비실에 신고를 하여 손자들에게 엄히 주의를 주고 조심하고 있다’는 것이고 10층 남자는 ‘소음방지매트를 깔고 조심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화가 난 목소리였다. 이에 11층 남자도 지지 않고 ‘그렇지 않아도 소음매트를 깔았으니 와서 확인하라’며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위층에서도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만 나도 참는다’며 나까지 끌어들인다. 전장(戰場)이 확대될 것 같아 황급히 ‘죄송합니다!’로 불을 껐다. 서로 자기주장 하는 말만 반복되는 터라 억지로 뜯어 말려 언쟁은 어정쩡한 상태로 끝났다. 11층은 작년에 이사 왔는데, 요즘은 이사를 와도 이웃에 인사도 없다. 인사만 하고 지냈어도 이런 언쟁은 피해 갔으리라. 층간소음문제는 소음문제 보다는 무시당했다는 감정과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몰이해가 더 크다.
우리는 컴퓨터, 스마트폰 만능시대에 살고 있다. 그 기계들은 누구와 함께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혼자 놀 수 있게 해준다. 사람 간에 부딪칠 일이 없으니 사람을 배려하고 타협, 조정하는 훈련이 안 되어 있다. 그러니 화내고 싸울 수 밖에.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좋지 않지만 화를 내야할 때 화를 내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는 것은 자칫 병이 될 수 있다. 화를 내야 할 때는 적당히 화를 내어 내재되어 있는 문제점을 수면위로 노출시켜 문제 해결을 하는 것도 좋다.
10여 년 전 바로 위의 형이 위암 수술을 했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이제는 안심할 정도이다. 그런데 그 형이 형제 중에서 제일 착하다.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형은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으로 알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화를 혼자 삭이다가 병을 얻은 것 같다. 형에게는 미안하지만 화를 잘 내느냐 안 내느냐는 인격수양의 문제가 아니라 타고난 DNA의 문제 아닐까? 가끔, 화를 내고 있는 내가 멋쩍어 질 때가 있다. 화를 안 내면 인품이
있어 보이고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일이 되어 가는 쪽으로 붙으면 손해 볼 일도 없을 텐데...
‘끓어오르는 놈만 미쳐 보이고 열 받는 사람만 쑥스럽다. 끓어올라 넘치더라도 부끄럽지도 쑥스럽지도 않은 세상이라면 얼마나 아름다우랴’라고 읊은 정양 시인의 시 <물 끓이기>가 내게 위안을 준다.
잘못된 행위에 대해 주위에서 관대하면 그 행위는 정당화 된다.
화가 나세요? 그렇다면 화를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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