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살아야 할 건축

건축은
사람들의 삶을 담아낼 때
제 기능을 하는 것
소통케 하고
살아 숨 쉬는
생명의 공간으로
만들어나가야

  오래 전 우리들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가 살았던 그 옛날 마을 어귀 정자나무 아래선 온갖 길흉사와 대소사의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고, 해질녘 고샅길 어귀를 접어들면 순이네 된장국 내음이 코끝을 감치고 집집마다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에 하루해가 저물어갔다. 또한 그리 오래지 않은 우리 옛집들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누구든 걸터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툇마루가 있었고, 그 집은 야트막한 담으로 둘러쳐져 있어 담을 사이에 두고 밥때도 잊고 잠시 수다를 떨던 우리의 어머니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풍경은 우리 옆에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다.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경제논리에 충실한 건축물을 양산하려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건축은 외형과 부피의 팽창에 집중하기 시작했으며 건축의 변화와 더불어 사람들의 생활방식도 점차 변화해갔다. 주거지는 이제 더 이상 인간의 자유로운 삶이 보장되고 서로의 이타성(異他性)을 중시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적 개념의 장소가 아니라, 부동산 개발의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고 그 증명이라도 하듯 더 거대하게 더 높게 쌓아올려 그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을 마치 콘크리트의 미로를 기웃거리는 모습으로 만든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러한 공간 속에서 시간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모두가 똑같은 모습의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생각과 목소리로 서로를 질타하고 견제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요즈음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간의 사고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상상력에서 벗어나라고 했지만, 우리는 우리들의 기억 속의 상상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저마다의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상상력의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보게 되는 똑같은 건물의 형태와 창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다양한 상상력을 기대할 수 없다. 지난 날 골목길 어귀를 돌아들면 나타나는 또 다른 세계가 늘 우리들에게 궁금증과 즐거움을 주었듯이, 이제 우리의 흔적을 보존하고 저마다의 삶과 생명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다양한 주거 형태를 만들어 내고 스스로가 그 꿈을 키워나가도록 주거 문화를 바꾸어 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어울려 사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아파트에는 잠시 걸터앉을 수 있는 툇마루와 고개를 내밀고 이야기를 나눌 담벼락도 없고, 김 아무개 박 아무개가 허물없이 드나들 수 있었던 사랑방도 사라져 버렸다. 일상사 가운데의 소통은 그저 우리 곁에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는데 이제 그것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온라인 상의 SNS로 대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그리워하고 얼굴을 마주하고 눈빛을 교환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 얼굴과 눈빛을 마주하는 만남을 통해 오감 아닌 만감을 열어 식어버린 마음을 데우고 따스한 온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편리함만이 제 일 원칙이 될 수 없음을 익히 알기에 건축은 사람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그릇이며 다양한 형태의 소통과 생명을 담아내는 공간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최근에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는 다양한 외부공간과 주민편의시설이 제공되고 있지만 허물없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역할과 과거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다양한 공간으로서의 추억을 제공하기에는 아직도 미흡하다. 건축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담아낼 때 비로소 제 기능을 하는 것이기에 그 공간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고 사람과 더불어 살아숨 쉬는 진정한 생명의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가야하는 공간을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소통의 공간이 되게 하여 우리가 뛰어다녔던 골목과 마당을 기억하는 것처럼 따스한 추억과 생명의 공간이 되게 할 수는 없는 것인지. 그래서 따스하게 지펴진 기억이 다시금 살아나는 상상의 꿈들이 되고 그 꿈이 새로운 희망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로서의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늦은 밤 스탠드 등을 켜고 우리 건축사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사람은 도시를 만들지만 도시는 또 사람을 만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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