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형남 건축사 / 대한건축사협회 편집위원장

 

건축사는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보장받을 때 책임이 생기는 것

공공에 건축사에 대한 왜곡된 시각과 자세의 교정을 강력히 요청해야

 

'권위주의 청산'이 시대의 큰 과제인 이때에 권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찌 보면 조금 어색하기는 하다. 그러나 권위는 세상을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 생각한다. 권위라는 말에 대한 부정적인 면은 상대편을 억누르는 '행세'이고 긍정적인 면은 전문인으로서의 책임과 자존감이다. 가령 예전 계급사회에서 타고난 신분으로 근거 없고 가당치않은 권위를 부린다던가, 이 시대를 아직도 먼 옛날의 계급사회로 착각한 거대 항공사 사주의 딸이 이륙하려는 비행기를 후진으로 회항시킨다던가 하는 행위는 '행세'로서의 권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정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영향력을 펼치는 것은 전문가로서의 자존에 결부되는 것이며 사회적 책무와 연결되는 아주 중요한 사회적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공인은 공인으로서의 권위가 있고 의사는 의사로서의 권위가 있다. 그리고 건축사는 건축사로서의 권위가 분명히 있어야한다.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보장받을 때 책임이 생기는 것이고, 세상은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건 아마 초등학교 2학년 정도면 아는 상식일 것이다.

 

건축사의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어렵게 실무를 수련하고 공부하여 얻어낸 건축사 자격증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 그건 아니고 건축에 대한 전문성과 책임감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령 건축사는 건물을 짓는데 있어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여러 가지 이익을 염두에 두고 설계를 하고 감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힘들게 배운 건축에 대한 기본과 양심으로 짓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건축사는 현장에서 늘 떳떳한 것이고 어떤 법적인 테두리에서도 떳떳한 것이다. 그런 자부심은 건축사가 받는 가장 의미 있고 묵직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학교를 졸업하고 건축사사무소에 취직을 했던 1980년대 후반은 건축사들의 권위가 굉장히 잘 유지되었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을 갓 졸업한 신출내기 건축사사무소 말단 직원이었지만 현장에 가면 공사하시는 분들이 나의 의견을 경청하고 같이 문제를 논의해주었다. 물론 연령이 한참 아래이고 경력으로 따진다면 정말 일천한 지경이었지만 그들은 설계자를 존중해주고 상의해주는 예의를 갖추었다. 그건 당연히 내가 잘나서여서도 아니고 건축설계라는 직종이 먹이사슬의 상단에 속해서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건 각자의 직분에 따라 맡은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원활하게 일을 처리하는 지혜라는 즉 사회적인 약속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운동경기에서 각자의 포지션을 지키고 각자의 영역을 지켜나가는것이 기본이고 경기를 이기는 기본 중의 기본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세상은 변했다. 태풍이 건축계를 쓸고 간 것도 아닌데 도처에서 그동안 우리가 마지막 보루처럼 고이 간직했던 직업적인 소신과 자긍심, 그리고 권위가 마치 망해버린 나라의 궁궐처럼 뼈대만 앙상히 남아있을 뿐이다. 건물을 짓더라도 건설사와 시행사가 우선이고 심지어 그들이 건축사 고유의 설계까지 품평하고 좌지우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건축물의 적법성을 판단하고 잘못된 사항을 지도하여 실행하게 도와줘야하는 공무원들이 마치 사법기관처럼 법규(상위법과 하위법의 위계도 없이 내 말이 법이다고 우기는 공무원만의 법)를 들먹이며 징계 운운하는 작태가 바로 그것이다. 건축물의 특별검사원 제도는 허가와 사용승인까지의 과정 중 현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1990년대 말부터 시행한 제도이다. 그런데 시행취지를 잘 들여다보면 건축사를 감시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던, 사실 무척 이상한 제도이다. 당시의 보도자료를 보면 건축부조리에 대한 척결로 시행하는데 모든 부조리가 마치 건축사에게서 시작된다는 듯한 이상한 시각에서 시작한다. 결국 건축현장에서의 비리와 부조리의 책임을 건축사에게 떠넘기고 또한 그 건축사들을 통해 서로를 감시하며 형사 처분까지 운운한다. 그리고 건축사들은 예기치 못하는 많은 사고와 그에 따른 ‘위험수당’의 개념도 없는 작은 액수로 공무원의 업무를 대행 해준다. 건축사는 공무원의 업무를 대행해주고 업무를 위임한 관청은 뒤를 캐고 감시를 한다는 발상자체가 해괴하다. 최근 어떤 지자체가 사용승인 특검을 시행한 건축물을 조사하여 무더기로 건축사를 징계한 사례도 나왔다. 이 경우 위험은 건축사가 떠안고 그에 따른 권한은 관이 가져가는 꼴이 된다. 앞으로 제도가 바뀌며 특별검사원 제도는 없어지고 대신 지역건축센터를 통해 그 업무가 수행된다고 한다. 제도를 바꾸는 이 시점에 건축사에 대한 왜곡된 시각과 자세의 교정을 강력히 요청해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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