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철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오랜 세월동안 한민족의 유전인자를 함께 나눠가진

우리 한국인들이 벌이는 한바탕 굿판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

한옥공간에 대한 우리 건축사들의 재해석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한류 스펙트럼이 넓혀질 수도 있을 것

그저 숨이 끊어진 듯이 멈춰버린 “고건축(古建築)”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이제 우리 건축사들도 각자 재기발랄한 눈을 들어 다시 한 번 더 깊이 들여다보자

 

흔히 전통이라고 하면, 우리는 다들 조건반사적으로 아주 먼 옛것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한(韓)”이란 낱말을 앞세우고 등장한다. 이를테면 한옥(韓屋), 한복(韓服), 한식(韓食), 한방(韓方), 한지(韓紙) 등이다. 오죽하면 어느 지자체에서는 그 한(韓)에 주목하고, “한 브랜드”라고 하는 업무부서까지 신설했겠는가? 한(韓)은,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우리 일상생활에 내밀하게 농축되어온 우리들만의 디엔에이(DNA)였다.

 

그런데 알다시피, 바로 그 한(韓)을 바탕으로 면면이 이어 내려오던 우리 전통문화가 어느 날 갑자기 쓰나미처럼 밀어닥친 근대화의 물결에 그만 익사해버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바다 건너 저 양식(洋式)이 물밀 듯 밀려오던, 아마 그날 그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양복(洋服)이나 양장(洋裝)에 양산(洋傘)까지 챙겨들고 호기 있게 양옥(洋屋)집 대문을 나서서, 양식(洋食)을 먹은 뒤에 양코배기들이 만든 서양(西洋) 영화를 보러가는 걸, 최고의 호사로 여기던 그런 시절이 한 동안 우리 사회를 풍미했던 것만 봐도 그렇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는 “한(韓)”이란 딱지가 붙어 있는 것은 죄다 내다 버리는 걸 당연한 줄 알고 있었다. 사실 과거 탓만 할 일도 아니다. 온갖 세상이치(?)를 스마트폰 하나에 담아 문명가도를 질주하고 있는 이 휘황찬란한 21세기에 들어와서도, 과거 어느 한때 이상야릇한 핑계로 양인(洋人)들에게 내다버린 국가전시작전권까지 아직도 우리는 되찾지 못하고 있을 정도니, 그게 병이라면 그 증상은 상당히 심각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건 그렇고, 자! 우리 일터인 건축으로 돌아와 보자. 한옥도 마찬가지다. 우리 건축사들은 아직도 한옥이라고 하면, 일단 우리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그저 “옛날 어느 타인의 집” 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곤 마치 사찰이나 궁궐을 대하듯, 먼저 양식과 격식부터 따지려든다. 살다보니 거기에 손때가 묻고 연륜이 더해져서 문화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옥이란 건축은 아예 처음부터 문화재로 태어난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답답하다.

 

그런데 그 고정관념은 의외로 쉽게 저 변두리에서부터 뒤집어지고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새삼 놀랄 필요도 없다. 지금 세계도처를 휘젓고 있는 한류(韓流)가 바로 그 증거다. 물론, 뛰고 뒤틀고 말춤을 추는, 그 행위 자체가 본래 우리의 “한(韓) 바탕”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오랜 세월동안 한민족의 정서적 유전인자를 함께 나눠가진 우리 한국인들이 벌이는 한바탕 굿판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 아니던가? 이 굿판에, 서울 암사동 수혈주거지에서부터 부석사 무량수전을 거쳐, 저 지상 123층으로 우뚝 치솟은 제2롯데월드까지, 줄기차게 직행해온 우리 건축이 그 굿판에 정중하게 초대받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것은 한옥공간에 대한 우리 건축사들의 재해석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한류 스펙트럼이 넓혀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한옥을, 아직도 삼엄한 감시카메라의 보호 아래, 그저 숨이 끊어진 듯이 멈춰버린 “고건축(古建築)”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이제 우리 건축사들도 예의 그 재기발랄한 눈을 들어 다시 한 번 더 깊이 들여다보자. 어쩌면 저 도도한 한류(韓流)의 흐름 한복판에 “한(韓)” 바탕 우리건축이 점정(點睛)을 해야, 비로소 승천을 할 수 있는 용(龍)인지도 모를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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