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이 행복하고 그것들이 넘쳐서
건축주 아니, 시민들의 행복한 삶을 조직할 수 있는
그런 건축인이 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나는 건축업무가 좋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의식주의 한 분야로서의 무게감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건축의 특성상 건물도, 관계 맺는 땅도, 관여하는 사람들도 매번 다르다. 즉 똑같은 프로젝트가 없어 언제나 새로운 업무라는 것이 흥미진진하다.

나는 어쩌면 수없이 되풀이 되지만 매번 새로울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들을 접하며, 현재 우리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를 고민하고, 우리 회사의 건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논의하는 이 일이 참 좋다. 특히 자신의 삶터를 짓고자 찾아오는 건축주들의 삶을 공감하고, 이들에게 어울리는 집을 상상하고 있자면 설계일이 건축일이 미치도록 좋아진다.

‘건축’이란 것을 통해 나 뿐 아니라 건축주 그리고 그 이웃까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자는 시간도 아깝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에서 한 발만 뒤로 물러서면, 저녁이고, 새벽이고, 주말이고 관계없이 미친 듯이 일만하는 회사 식구들이 보인다. ‘설계=행복한 일’이라는 최면에 빠져 개개인의 삶의 질은 하락하고 있다.

건축주와는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고 삶의 비전을 공유한다. 아울러 그것들을 담는 집을 만드는 과정이 행복으로 가득하길 최선으로 노력한다. 또 주거 환경뿐 아니라 업무 환경에서도 상상력과 감수성,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건축이, 공간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며 “사람이 건축을 만들고 다시 그 건축이 사람을 만든다”는 윈스턴 처칠의 명언을 들려준다. 일하는 사람들이 상상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구글’ 같은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많은 기업들이 공간에 대한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정작 설계 과정에서 내 식구들에게 업무 일정의 빠듯함, 설계자로서의 책임감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또 정작 공간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설계자의 공간 운영이 너무 빈약하다.

아침에 출근해서 점심을 먹으려고 일어나기 전까지 또 그 이후에도 컴퓨터 한 대씩을 붙잡고 종일 눈싸움을 한다. 동료들과는 건축이야기를 하는 대신 당장 납품을 앞둔 업무를 처리하느라 전전긍긍이다. 그럼에도 회사 안에서 딴 짓을 하며 새로운 뭔가를 보충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에 농작물도 심고, 한해살이 꽃도 가꾸고, 동물도 키우고 있지만 잃어버린 감수성을 되살리자면 시간이 필요하다.

욕심으로는 사무소 공간을 넘어 이웃의 삶에도 동참했으면 좋겠다. 회사 식구들이 딴짓(이웃을 넘어 지역공동체 활동)에 정신이 팔려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풍경이 연출되어도 좋다. 건축 하는 우리는 어쩌면 너무 모범적(?)이어서 그런 것들이 아쉬웠다.

또 회사라는 공간 자체의 주인공이 회사 식구들임을 확실하게 느꼈으면 좋겠다.

그 이후 우리의 건축이 어떤 과정을 통해 종착점에 도착할지 생각하고 공유하고 공감하고 나아가 행동까지도 함께 하길 기대한다.

우리의 일상이 행복하고 그것들이 넘쳐서 건축주 아니 시민들의 행복한 삶을 조직할 수 있는 그런 건축인이 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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