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고교를 졸업하게 되면 맞닥뜨리는 일과 중 하나가 면도하기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전기면도기를 많이 쓰고 있지만 필자의 세대는 비누거품을 묻히고 안전면도기로 수염을 밀어낸다. 삭삭 밀어갈 때의 그 쾌감을 전기면도기에서는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최초의 안전면도기를 제조한 질레트는 1902년 대량 생산에 들어갔지만 51개 면도기와 168개 면도날을 파는데 그쳤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 속에서 생활하던 병사들에게 지급된 후, 질레트는 100여 개국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세계 면도기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1980년대에 출시한 한국산 도루코 면도날은 그 성능이 질레트에 결코 뒤지지 않는데도 국내에서 조차 밀리고 있다. 이는 역사와 지명도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질레트의 성공은 어디에 있는가?

질레트는 광고판을 어린이놀이터에다 세운다고 한다. 어린이들의 눈에 자연스럽게 인이 박히도록 하는 것이다. 10년 이상 매일 광고판을 보아온 그들이 면도할 나이가 되면 자연히 질레트를 찾는 것이다. 10∼20년 앞을 내다본 그들의 원대한 매출전략인 셈이다.

얼마 전 건축사 한분이 자신의 저서에 “대한건축사협회 추천도서”란 단어 넣기를 원했는데, ‘전례가 없다’는 사유로 거절 당했다고 한다. 이 책은 이미 우수저작상을 수상하였다. 지금까지 1만 여 권이 팔리고 청소년과 어린이를 위한 도서이기 때문에 스테디셀러가 될 책이다. 학교도서관으로 팔린 책이 많다하니 한권에 10명만 보아도 10만 명이 보았을 터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 수효는 늘어날 것이다. 어린이들은 감수성이 빠르고 기억력이 좋다. 만약에 ‘대한건축사’ 이름이 들어갔다면 그 효과는 20∼30년 후 그들이 집을 지을만한 재력을 갖추었을 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책 한권이 팔릴 때마다 10원이고 100원이고 상징적으로 장려금을 지급하지는 못할망정 ‘전례가 없다’고 거절한 협회의 처사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설계비 제 값 받기 운동’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 성과는 미미하다. 왜 그럴까? 근본적으로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계비 천만 원을 더 들이면 집 가치가 2천∼3천만 원 더 나갈 때 설계비의 제값받기는 이루어진다. 또한 대한건축사협회 회원에게 맡기면 비회원보다 믿을 수 있다는 것이 국민의 의식 속에 스며들 때, 비로소 모든 건축사가 협회의 회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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