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5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규제, 기술발전을 저해하는 규제 등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관련 없는 핵심 규제들을 중심으로 부처가 그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소명하지 못하면 일괄해서 폐지하는 ‘규제 기요틴(단두대)’을 확대할 것”이라며 규제개혁의 의지를 강력하게 표현했다. 행정 편의적으로 만들어진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규제가 국민 생활과 기업 활동에 어려움을 주는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것이 현실에서 성장동력에 불을 붙이고,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최우선 과제로 규제개혁을 실천하겠다는 의지와 노력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규제개혁이 꼭 필요한 규제마저 없애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일기도 한다. 정부의 규제개혁 방향이 지나치게 기업활동에 맞춰져 있고 환경파괴가 우려된다는 시각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 건설업계에서 상공회의소, 전경련 등을 통해 설계와 시공 겸업제한 폐지를 규제개선과제로 제기한 것이 그 한 예이다. 건설업계는 현행 제도 아래서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지 않고도 ▲엔지니어링사업자 소속 건축사가 수행하는 특수건축물과 ▲건설업자 소속 건축사가 수행하는 건설업자 또는 계열회사의 분양목적 외의 업무시설에 대해 설계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체 설계범위를 분양목적 포함 모든 업무시설과 아파트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무자격자가 건축사와 공동으로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고 건축사 20명이상을 채용하는 경우 법인건축사사무소 개설이 가능하도록 규정한 현재의 규정을 완화할 것과 건축사사무소 명칭 의무사용을 삭제할 것을 건의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건설업계의 요구가 받아들여져서 대형 건설사들이 한 두 명의 건축사를 고용하여 모든 건축물의 설계에 나서게 된다면, 건설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불과한 건축설계시장은 하루아침에 붕괴될 것이다. 전국의 12,000여 명 건축사들은 대부분 소규모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지역 사회의 필요에 알맞게 주거와 업무시설을 설계하고 있다. 이 시장에 대형 건설사가 밀어 닥친다면 수많은 중소 건축사사무소들이 대형 마트에 밀려 사라진 동네 슈퍼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나아가 건축물의 설계와 시공이 모두 건설사의 자본에 의해 지배되는 구조는 설계의 품질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 안전이나 설계의 독창성이 효율성의 뒷전으로 밀리는 현상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건축설계에 관한 한 정부의 정책은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2008년 건축기본법 시행에 따라 대통령자문 ‘국가건축 정책위원회’를 발족했고, 올 6월부터는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을 시행하는 등 건축설계 분야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면서, 다른 법으로 건축사 자격이 없는 무자격자·건설업체가 건축설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위원장은 규제정보 포털의 인사말에서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공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규제의 역할도 더욱 강조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규제개혁과 규제의 유지는 모두 대다수 국민들의 행복과 서민경제부흥을 뒷받침 할 수 있어야 한다. 규제완화가 대기업의 이익만 반영하고 중소업자를 죽일 수 있는 것이라면 애초의 취지에도 어긋나는 일이 될 것이다. 부작용이 예상되는 규제완화는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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