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내내 극장에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찾는 관객이 끊이지 않는,
백발의 노부부가 손자들 손을 잡고 체홉을,
셰익스피어를 감상하는 객석 모습을 꿈꾸어 본다.

 

필자는 지금 대학로에 있는 유니플렉스 극장에서 <맨 프럼 어스․Man from earth>라는 연극을 공연 중이다. 신망 받는 역사학 교수인 ‘존 올드맨’이 학과장 자리와 정년이 보장된 교수직을 버리고 떠난다는 소식에 그를 아끼는 동료 교수들이 모여 환송회를 연다. 갑자기 떠나는 이유를 캐묻는 동료들에게 사실 자기는 늙지도, 죽지도 않고 만사천년을 살아온 인간이며 늙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남들이 알아채기 전에 십년에 한번 씩 훌쩍 떠나간다는 존의 충격적인 고백으로 시작되는 연극이다.

작품의 이야기 구조도 탄탄하고, 지적인 재미에 더해서, 잘 알려진 배우들도 여럿 나와서인지 꽤 많은 관객 분들이 보러 오셔서 성황리에 공연 중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송년회를 겸해서 동창회 등 각종 모임에서 부부 단위의 중년 이상 관객 분들도 많이 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연극을 자주 접하지 못한, 심지어는 연극을 거의 처음 보시는 듯 한 관객들도 많이 보였다.

연극 관람이 낯설다보니 마치 집에서 연속극 보듯이 중얼거리거나 대화를 나누며 “그렇게 된거야?” “아닌 거 같은데…” 하면서 보시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 물론 흔한 경우는 아니다. 요즘은 관극 에티켓을 많이들 알고 있어서 휴대전화 벨소리도 어쩌다 한번 들리는 정도이다. 예전에 어느 지방공연에선 휴대전화로 통화하시는 분도 본 적 있다. 진짜로 말이다. 공연하는 배우나 주변 관객들에겐 방해가 되고 짜증나는 상황이다. 그러다가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분들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극공연을 자주 접할 기회가 없다보니 잘 몰라서 그런 것이지, 사실 그 사람들 입장에선 극중 상황에 몰입해서 재밌게 보시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아직 우리 사회에서 연극은 낯설고 어려운, 무언가 특별한 거란 인식에 극장 문턱이 높고(입장료도 만만치 않다) 그만큼 연극을 즐길 수 있는 기회도 적었다는 생각도 해야 하지 않을까?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연극을 접하고, 조금씩 다양한 연극의 재미를 알아가면서 나중엔 너무나 친숙하게 공연장을 찾게 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면 그런 관객은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적 수준이 높으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극들이 많이 만들어져야한다. 그것은 연극하는 우리들의 몫이라 본다.

송년모임 때나 한번 보는 연극이 아니라, 일 년 내내 극장에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찾는 관객이 끊이지 않는, 백발의 노부부가 손자들 손을 잡고 체홉을, 셰익스피어를 감상하는 객석의 모습을 꿈꾸어 본다.

 

※첨언-공연을 끝내고 제일 많이 받는 질문

Q : “그 많은 대사를 어떻게 다 외우세요?”

A : 배우들이 특별한 능력을 가진게 아니랍니다.

한 달 이상 그 이야기 속에서, 맡은 배역의 논리와 태도에서 나오는 말로 상대 배역과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외워진다. 그냥 어려운 공식을 기계적으로 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운 의학용어 같은 전문적인 용어들이 많은 대사는 우리도 별 수 없습니다. 기계적으로 외우는 수밖에.

 

Q : “갑자기 대사가 생각이 안날 땐 어떻게 하세요?”

A : 배우들도 사람인지라 그럴 때가 있습니다.

영화나 방송 에선 끊고 다시 할 수 있지만 연극에선 그럴 수 없지요. 비슷한 말로 둘러대거나 주변 배우들이 도와준다. 한 달 이상 같이 연습하다 보면 상대방 대사를 대충 다 알게 된다. 가끔 대사 한 두장을 통째로 뛰어넘는 경우도 있다. 대세에 큰 지장 없을 땐 그냥 넘어가기도 하지만 중요한 사건이나 키워드가 있을 때는 약간 무리가 있더라도 둘러대면서 다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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