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리코가 그린 반스 박사

필라델피아의 반스 박사는 제약으로 돈을 번 후 그의 친구의 도움으로 프랑스의 인상주의의 그림을 20점 구매하게 된다. 1923년에 반스 박사는 펜실바니아 예술아카데미에 전시를 하게 되나, 당시의 예술문화계는 인상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반스 박사를 괴팍한 사람이라며 비판하였다.

그 후 반스 박사는 필라델피아의 모든 기관들과 예술계에 등을 돌리고, 교외지역에서 그의 집인 미술관, 부인의 수목원이 어우러진 곳에서 수집품전시가 아닌 예술품과 수목을 통한 교육에 치중했다. 그는 그의 공장 직원들에게 강의를 하며 수집품을 보여주었다. 교육철학자 존 듀이를 초대 큐레이터로 영입하여 예술을 통한 교육에 치중하였다. 또한 그의 친구 존슨앤존슨의 사장의 수집품이 사후에 필라델피아 뮤지엄으로 흡수되는 것을 보고 반스 박사는 수집품들이 그의 집을 떠나지 않도록 유언을 만들었다. 반스재단은 작품을 관리하며 유언을 유지하였으나, 재정상의 이유와 많은 대중이 편히 보지 못하는 이유 등으로 해서 반스 박사가 그토록 싫어하던 필라델피아 시에서 미술관을 유치하게 되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시와 주정부에서 25억불에 상당하는 규모의 미술품을 취하게 된 과정을 고발하는 듯한 다큐멘터리 영화 <The Art of the Steal>을 제작하기도 한다. 1988년 반스 박사가 위임한 디렉터의 사후, 링컨대학에 관리가 위임된 후 새로운 디렉터쉽에 의해 작품들은 투어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좋은 작품들은 대중들에게 보다 많이 알려져야 한다는 시대의 흐름과 재단운영의 어려움에 의해 반스 박사가 그토록 싫어하던 필라델피아에 입성하게 됐다. 반스 박사의 은자적 태도는 사회를 향한 자폐였고, 예술교육을 지인에게만 베푼 것은 데카당트한 면이 없지 않다.

반스재단에 의해 건축사로 선정된 토드 윌리엄스와 빌리 치엔(Tod Williams & Billie Tsien)은 유령의 설계의뢰인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회고한다. 루이스 칸의 펜실바니아 대학때의 스승, 폴 크렛(Paul Cret)이 설계하였던 반스 박사의 저택은 좌우대칭이 이루어진 신고전적인 느낌으로 간결한 형태이다. 입구 양옆에 부조되어 있는 아프리카 조각 등에 의해 윌리엄스와 치엔도 친근감을 느꼈다한다. 건물과 더불어, 반스 박사의 특이함은 그림을 배치한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다른 양식의 그림들을 대칭으로 배치하며 그림위에 철물을 배치한 특이한 방식이다. 반스 박사의 콜렉션을 알게 된 르 코르뷰지에는 방문의사를 편지로 보냈으나 그가 미국에 도착한 후 4일후에의 일정이라 그는 실제로는 거절을 받은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반스 박사는 르느와르의 181작품, 세잔의 69작품, 마티스의 59작품, 피카소의 46 작품을 모으게 됐다.

▲ 폴 크렛이 설계한 반스주택(1922) ⓒ송하엽
▲ 반스 박사가 그림을 배치한 전시실 ⓒ송하엽

윌리엄스와 치엔의 새로운 설계로 우연히도 폴 크렛이 설계한 로댕 미술관 옆에 새로운 반스 미술관이 들어선다. 프랭크린 대로(Franklin Avenue)는 필라델피아의 주요 문화시설이 들어선 새롭게 1919년 쯤에 만들어진 상징적 거리이다. 분수로부터 미술관에 이르며, 언덕에 위치한 미술관은 영화 록키에서 록키가 챔피언 방어전 실패이후 흥청망청한 삶을 뒤로 하고 결전을 다짐하며 뛰어올라간 계단이 있는 곳이다. 또한 그 계단은 매해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 행사 기념공연을 위해 무대로 사용되는 곳이다. 이렇듯 상징적인 거리에 위치하게 된 새로운 반스 미술관은 비대칭적인 모습으로 메리온 저택의 대칭적인 모습에 파격을 주었다. 주변 조형물도 수목에 둘러싸인 수평성을 강조하며 평온한 모습을 취한다. 기념비적 거리에서 반기념비적인 모습이다. 역사이론가 케네스 프램톤은 건물의 이런 모습이 반스 박사의 데카당트하며 아방가르드한 태도를 재현했다고 본다.

▲ 윌리엄스와 치엔이 설계한 필라델피아의 반스뮤지움(2012) ⓒ송하엽

설계과정에서 윌리엄스와 치엔은 반스 박사에 대한 생각, 필라델피아에 대한 생각, 그들이 좋아했던 장소의 공간감, 그들이 이전 작업에서 설계한 공간과 재료의 형국들에 대하여 참조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굉장히 자전적인 기억으로 알도 로시의 작업과 글을 연상시킨다. 알도 로시는 ‘유추의 건축’이란 글에서 유추란 실제보다는 상상적이며 과거에 주제를 숙고하는 것이라 했다. 그는 그가 본 것과 아는 것들에서, 즉 ‘기억’과 ‘관심목록(Inventory)’에서 골라서 조합하는 디자인을 하며, 구축된 상황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우수감을 만들어서, 로시의 작업은 이탈리아의 정감인 우수를 표현하기에 적절하였다. 로시의 다른 책, ‘과‘학적인 자서전(A Scientific Autobiography)’ 역시 유효하다. 과학적인 것이라 명명한 것은 그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객관화하려는 노력이다. 윌리엄스와 치엔은 로시와 거의 흡사한 방법의 건축적 접근을 구사한다. 로시는 건축분야에서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로스트 (Marcel Proust)와 종종 비교되곤 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페트리 코트 (Petrie Court)에서 미술관의 리빙룸을 생각해내고, 코니 아일랜드의 데크길에서 해체된 나무를 가져와 칠레의 한 교회에서 본 헤링본 패턴의 마루를 만들어 공공성을 투사하려한다. 조경에서는 덴마크 루지애나 뮤지움의 건물과 조경의 조화를, 리차드 하그가 설계한 블로델 리저브 (Bloedel Reserve)를 조경가 로리 올린(Laurie Olin)이 건물의 앞에 수공간으로 형상화하였다. 그들의 이전 건물 버클리대학의 도서관에서 적용했던 간접광의 천정을 리빙룸에더 발전된 단면으로 적용하였다. 윌리엄스와 치엔의 건축은 창조적으로 데카당트하다. 기억과 관심목록의 지속적인 반복과 개선으로 강한 고집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윌리암스와 치엔에게 반스재단이 주문한 설계조건은 메리온주택의 전시실평면을 바꾸지 않는 것이었다. 설계에서는 양쪽에 광정과 정원을 배치하였으며, 리빙룸의 배치는 전시실과 평행하게 거대한 규모로 배치하였다. 리빙룸은 전실로 쓰이면서 기금마련 파티를 위한 공간으로 쓰인다. 실내외로 연결되어 다양한 행사가 가능하다. 새롭게 재현된 반스박사의 사적인 데카당트한 전시공간과 반스재단이 마련한 공적인 공간, 리빙룸의 대조는 극과극을 이룬다.

▲ 반스뮤지움의 평면도(하부: 반스저택의 전시실들)
▲ 반스뮤지움의 리빙룸 ⓒ송하엽
▲ 반스뮤지움의 리빙룸 외부 ⓒ송하엽

현대건축에서 공적인 공간은 점점 더 늘어나나 성격은 불확정적이며 때로는 예비적이다. 앞으로의 행사를 위해 비워놓는 것이다. 건축사들의 기억과 관심, 그리고 유형이 구사된 창조적인 데카당트한 공공공간은 불확정적이지만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 집요하게 개성적인 디테일과 유형의 반복과 개선이 공유되어 우리나라 전체의 공공공간에 적용된 후에라야 기대되는 예비적인 행위들이 최대한의 건축적 도움을 받아 발현되어 의미충만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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