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Think outside of the box’라는 말이 열병처럼 유행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틀을 깨는 사고를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걸렸고, 수많은 청춘들과 그에 공감한 인생 선배들의 새롭고 다양한 시도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을 만들었다. 전형적인 것은 진부하게 되었고, 어디까지가 한계, 또는 범위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청춘답지 못하던 때였다. 우리는 늘 새로워야 했고, 늘 상상해야 했다.

지금 케이블 채널 XTM에서 <더 벙커>라는 자동차 프로그램의 담당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나로서는 마케팅, 그것도 방송 마케팅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에서 필요한 건 틀을 깨는 상상력과 창의력이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던 터였다. 늘 새로워야했고, 그렇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많이 실패해야 했다. 틀을 깨는 사고는 나처럼 평범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부담이자 의무감, 그리고 두려움이었다. 우리가 접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는 엄연히 ‘경계’가 존재했으니.

<더 벙커>라는 자동차 프로그램은 MC들이 구매해 온 중고차를 정비와 튜닝을 통해 업그레이드해서 세상에 단 한 대밖에 없는 차로 변신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이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태그 라인은 바로 ‘자동차 가치의 재발견’.

그 누구도 이 프로그램이 자동차 프로그램이라는 것에 의심을 품지 않는다. ‘남이 타던 차’에 불과했던 중고차를 세상에 단 한 대밖에 없는 ‘나만의 차’로 변화시키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에게 경매로 판매하는 포맷은 확실히 경계를 허문 것은 아니었다. 다만 벙커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경계를 넓혔을 뿐.

Think the wider box.

그 것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어떤 것의 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한 노력은 더 큰 경계를 그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벙커는 여전히 자신의 바운더리를 넓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근 서울시와 협약을 체결해 진행하고자 하는 ‘친환경 경제운전 캠페인’일 것이다. 자동차 프로그램이 자동차로 인한 대기오염을 100% 없애자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바운더리를 넘어서는 일임에 확실하다(이건 차를 타지 말자는 이야기니까). 하지만 자동차가 메인인 프로그램에서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대기오염을 줄이고 연비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그 자신이 가진 경계를 한 발짝 더 확장시키고자 하는 고민이 선행되었던 결정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경계 지어진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많은 것들 중에서 의미가 특정지어지지 않은 것들은 거의 없다(물론 우리가 경험하고 의미를 부여한 것들이 세상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볼 수 있는 세상을 넓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저 바깥이 아닌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의 경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소극적이지만 가장 현실적인 모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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