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ional Technical Library in Praha)

예술이 먼저냐? 건축이 먼저냐? 하는 문제는 어찌 보면 닭이, 달걀이 먼저냐 하는 이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술적 놀이본능이 먼저냐? 아니면 건축적 필요성이 먼저냐 하는 문제이다. 예술을 놀이본능으로 보는 것은 본능이 장식과 음악을 통해 표현된다는 것으로, 현대에 들어서 이 논리는 점점 더 강해져, 예술이 사회에 대한 풍자와 해학을 담은 의사소통의 수준이 되게 하였다.

그러나 산업혁명쯤에 독일권에서의 담론은 예술은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우세하였다. 건축사 젬퍼의 논지에 따르면 예술의 원리와 공예의 원리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예술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라쇼동굴의 벽화는 예술이 단지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유희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원시인들은 소와 동물들을 흥겨운 기분을 상상하며 그렸던 것이다. 예술은 유희본능이다.

프라하의 국립기술도서관의 건축사그룹 프로젝틸(Projektil Architekti)은 국립기술대학교 (National Technical University)가 위치한 프라하 6 지역의 원형광장을 중심으로 한 방사상 계획의 원형광장의 모양에 영감을 받았으며, 도서관을 사람들이 모이는 원형의 광장으로 여겼다. 원형광장, 열린사회, 현대적, 기념비적, 종합예술, 에너지절약 등등의 개념이 모여서 지금의 원형과 사각형 사이의 평면을 정한 것이다.

건축사와 그래픽디자이너, 예술가와의 협업의 가치기준은 건물이 기술교본(Technological Schoolbook)이 되는 것을 목표로 어떻게 건물이 디자인되었고 작동하는 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건물을 멀리서 접근할 때부터 이는 명백히 드러난다. 커튼월 외부에 하얀 줄과 숫자는 건물의 높이와 둘레를 알려주며 시작한다. 둘레 263m, 높이 21m 의 건물이구나. 커튼월위에 무심히 지나가는 흰 치수선은 마치 건물이 도면과 같은 효과를 낸다. 실내에 들어가서도 이런 싸인은 지속된다. 도서관에서 조용히 혼자 공부할 수 있는 캐럴(Carrel)의 방 번호는 예를 들어 “IQ 165”이다. 또 노트북의 사용을 위해서 따로 만든 방의 이름은 “87DB” 이다. 계단을 오르면 몇 칼로리가 소모되는지 등등 벽과 바닥에서 물리적인 정보를 계속 제공한다. 이런 참신한 발상에 의해 열린사회로서의 대학도서관으로서의 면모는 갖춰진다.

도서관의 모토는 “우리 도서관의 공간은 사람들에게 열려있고, 생각의 교환과 예술에도 열려 있다. 우리 건물의 지적인 협업은 지금도 지속된다. 도서관의 공간들은 지적인 호기심을 이끌어내고, 유머러스하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는 것이다. 도서관의 압권은 아트리움이다. 전 6층으로 뚫렸으며, 댄 퍼조브스키(Dan Perjovschi)의 그래피티로 가득하다. 루마니아 출신인 그는 예술가인 스스로의 역할을 “해석자” (Commentator)라고 규정한다. 그의 단어와 이미지를 통한 해석과 비평은 짧지만 촌철살인이다. “세상을 보여주는 200개 이상의 그림” (200 and Something Drawings to Describe the Word)이 그림들의 제목이다. 그의 그림들의 주제는 환경에 대한 성찰, 승자의 역사, 군중의 역사에 대한 비판으로 크게 주제화되며, 열린사회를 위한 사유와 풍자의 깊이를 더한다.

환경에 대해서는,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조약이 중구난방으로 풍기던 공장 매연을 일정한 방향으로 나오게 하는 것처럼,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명목만 보기 좋은 허울로만 포장한 것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승자우선주의를 비판하기도 한다. 2등, 3등 그 외의 존재는 잊혀 지게하는 1등에 절대적 권위를 주는 현상은 좋다 볼 수 없다. 권력자들은 선거를 통해서 1등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또한 역사는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고쳐지고 자신의 업적이나 활동에 문제가 될 만한 역사는 짓밟히기도 하는 현실을 작가는 꼬집는 것이다.

결국, 그는 군중의 역사에 대하여서도 코멘트를 하고 있다. 위쪽은 십자가 3개 있는 그림으로 예수죽음의 비극을 다루며, 아래쪽은 많은 십자가가 있는 “통계(Statistics)” 라는 그림이 있다. 군중의 역사는 의미가 없는 죽음으로 그저 죽은 사람들의 숫자만이 남았다는 현실을 가르쳐 준다. 이와 비슷한 그림으로 오른쪽은 근대화이후 무덤의 배치를 보여준다. 격자로 형성된 무덤의 배치가 익명적인 상황을 보여준다면, 왼쪽은 같은 묘비이지만, 로마의 지형위에 펼쳐진 기독교 국교화 즈음의 순교지의 장소이다. “영웅들(Heroes)”로 명명되어 순교로 인한 다양한 장소에서의 기념을 현대에 와서는 공동묘지에 줄을 맞춰서 기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국립기술도서관은 건축과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방식을 그래픽 디자인으로 표현하며, 학생들로 하여금 사유하게 하고, 중정의 예술, 퍼조브스키의 그림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며 사유하게 한다. 전자가 즉각적인 정보라면 후자는 해석하게끔 한다. 이 두 가지 방식의 소통이 존재하는 것이다. 건물이 전략이 되어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까? 아직까지 필자는 이 건물보다 나은 방식을 보지 못했으며, 건물은 그 작동을 표현하며, 예술은 사회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 소위 종합예술적인 건조환경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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