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다리 골절 판정받은 지 한 달… 늘씬한 다리를 자랑하는 여름과 함께 오랜만에 아침 등산에 나섰다. 전원주택에 이사 온 후 습관처럼 해 왔던 짧은 산행은 그런대로 생활에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트레이너 역할을 했던 우리 집 그레이하운드-여름-의 부상 때문에 중단한지 한 달… 그 사이 짧은 세월은 익숙했던 산의 모양을 낯선 곳으로 변모시켜 놓았다. 좁은 산행로에는 풀이 나있었다. 양쪽의 공간은 덤불 때문에 많이 좁아져 처음 온 곳처럼 느껴졌다. 전에 없던 아침 날벌레들이 철을 만나 떼 지어 날고 있었다. 그래도 新綠의 싱그러운 나뭇잎은 상쾌한 아침 공기와 명랑한 새 울음소리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내 곁에 있는 또 새로운 세상…

두 걸음을 걷고 한번 멈추는 느릿느릿 거북이 산행은 평화롭고 조용한 장면을 연출했다. 반환점에서 체조를 했다. 오랜만에 목줄에서 해방돼 맘껏 자유를 즐기고 있는 강아지는 주변을 킁킁거리고 분주히 돌아 다녔다.

 

사람

멀리서 들리는 사람 목소리. 몇 명이 시간 맞춰 산에 오르는 모양이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목소리가 크다. 겁쟁이 강아지는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 그 빠른 걸음으로 달아난다. 나도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까지 더불어 아침의 정적을 그렇게 깨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 아마도 요란할 것이 분명한 옷 색깔들을 마주치기 싫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목소리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걸었다. 봉우리를 하나 넘자 다시 사방은 아침의 상쾌함을 되찾았다. 아침 태양 앞에서 마저 체조를 했다. 오늘 하루도 평화롭게 보낼 수 있기를…

 

내려오는 길

엊그제 완성한 舊石器 時代 돌화로 생각이 났다. 집에 널 부러진 자갈을 모아 만든 야외 바비큐… 밤에 불을 때니 좋았다. 깜깜한 밤의 모닥불은 태고의 추억을 가져다주었다.

......땔 나무 생각이 났다. 다음 기회를 위해 산에 있는 나뭇가지를 조금씩 모아두면 좋지 않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둥지에서 떨어져 말라있는 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노다지였다. 가까운데서 지팡이 삼아 한 개를 주워 오른손에 들었다. 조금 내려오다 빈손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가지 한 개를 더 주워들었다. 양손에 지팡이가 생겼다. 걸음도 좀 더 편해지는 것 같고, 강아지도 혼자 잘 따라오니 불편함이 없었다.

 

慾心

집에 가까이 오자 잔가지들이 점점 더 많이 널려 있었다. 불 땔 때 쉽게 꺾을 수 있는 안성맞춤의 잔가지들이 발길에 밟혔다. 그 순간, 상대적으로 더 먼 거리에서 지팡이 삼아 가져가겠다던 결정이 잘못된 것인 줄 알게 되었다. 좀 더 적당한 가지로 바꿔 들었다. 몇 걸음 더… 이제 집의 지붕이 보인다. 집에 거의 다 왔다. 이번에는 누군가 뽑아 버린 나무뿌리가 눈에 들어왔다. 동네 사람들이 유행처럼, 개떼처럼 달려들어 땅을 파헤치고, 울타리를 치고 하는, 텃밭 조성 붐 때문이리라.

그 지독스런 인간의 의지는, 혼자서 들기도 불가능한 무게의 나무뿌리를 나뒹굴게 만들었다. 어떻게 파냈을까? 그 위에 있었을 나무둥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방에 퍼져 단단히 뿌리내려 있었을 그것을 어떻게 그리 간단히 파내고 또, 찌그러진 깡통처럼 나뒹굴게 했을까? 그 엄청났을 노동량을 어찌 가족 단위에서 감당했을까… 그 식구들의 허리는 온전할까… 정말 지독하게 강인한 지구의 벌레다. 인간은…

그 강철벌레가 버린 부산물을 또 다른 벌레가 와서 요모조모 뒤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나’라는 벌레…

화로 옆에서 의자로 쓰면 분명 좋으리라. 잔가지는 잘라 태우고… 적당한 뿌리를 찾아 낑낑거리고 집으로 내려 보냈다. 그러고도 잔가지 몇 개를 더 찾아 집으로 돌아왔다.

 

結末

땔나무 생각이 든 순간부터 아침산행은 없어지고 말았다. 단지 火木 구하는 작업만이 있었다. 아침의 청명함이 좋아 다른 사람 목소리와 간격을 유지했던 思索人은, 화목의 기능적 가치에만 관심을 둔 욕심쟁이로 변해있었다. 그것보다 더 좋은 것, 이것보다 더 나은 것… 아침 숲은 오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고, 화목으로 변신한 마른 잔가지만이 눈에 들어 왔다.

사람사이의 희망과 실망의 끝도 없는 파도를 감당하기 힘겨워, 초파일날 내 욕심 좀 없애 주세요라고 빌었던 그 마음이, 그래서 아침마다 비우러 산에 오르려는 사람이…

그 작은 욕심 하나에 온 마음을 다 빼앗기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단지 순간…

버리자. 그렇게 실망했으면서…

버리자. 희망이란 게 결국 욕심이란 것을 알았으니…

버리자. 마음 가지는 게 죄악인 것을…

버리자. 버리자… 버리자…

마음먹지 말고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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