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박물관은 학습공간이다. ‘학습’이란 질문에서 시작한다.
아이가 묻기 위해서는 부모의 질문이 최소한으로 줄어야 한다.

 

“와! 여기 티라노사우루스가 있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의 손을 잡고 입장하던 한 아빠가 이렇게 소리치면서 아이 손을 놓고 공룡으로 다가선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 많아서 정신없는 중에 아빠 손까지 놓친 아이는 순간 당황하면서도 “와, 우리 아빠가 티라노사우루스도 아시다니 정말 멋진 아빠야.” 라는 표정을 짓는다. 한 30초 동안. 그리고는 실망스럽다는 투로 말한다. “아빠, 티라노사우루스가 아니라 아크로칸토사우루스인데.” 공룡 밑에 쓰여진 이름을 본 것이다.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에서 거의 주말마다 한 번은 목격하는 장면이다. 아빠가 티라노사우루스를 외친 지 채 3분이 되지 않아서 가족은 아크로칸토사우루스 앞에서 사진을 찍고 다른 전시물로 향한다. 공룡은 엄청난 크기 외에는 별 관심거리가 아니다. 우리에게 앞니, 송곳니, 어금니가 있는 것과는 달리 거대한 수각류 공룡에게는 송곳니밖에 없다든지, 다리 사이에 시옷 모양으로 있는 골반뼈는 어떤 역할을 할지, 수평으로 길게 뻗친 긴 꼬리의 역할은 무엇일지, 저 작은 앞다리가 과연 사냥을 하는데 도움이 됐을지 그리고 눈앞의 공룡 골격이 진품일지 아니면 복제품일지 따위는 관심이 없다.

나는 거의 매일 한 번쯤 관람 안내를 한다. 이왕이면 고학년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다가가 내 소개를 하고 90분쯤 같이 둘러보겠냐고 제안을 하면 대개 반색을 하며 반가워한다. 누군가의 설명을 듣다 보면 뭔가 질문을 하기 마련이다. 제일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공룡은 왜 멸종했어요?”라는 것이다. 그런데 웬만한 아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6,500만 년 전 거대한 소행성이 멕시코 유칸타 반도에 충돌한 후 엄청난 기후변화를 겪었고 그때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거대 파충류들이 멸종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뭘 물어봐야 할지 몰라서 물었을 뿐이다.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왜 최근 3년 동안 박물관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공룡의 멸종 이유만 묻고 공룡이 왜 탄생했는지는 묻는 않느냐는 것이다.

경남 고성 공룡박물관 앞의 상족암에는 공룡 발자국이 길게 나 있다. 썰물 때 아빠와 어린 아들이 손을 잡고 공룡 발자국과 나란히 걷는다. 정말 아름다운지 장면이다. 아이와 아빠가 다정하게 대화를 한다. “아빠 공룡이 왜 바닷가를 걸었을까요?” “음, 물을 먹으러 왔나보지.” “아빠, 공룡은 바닷물 먹었어요?” 아빠는 대답을 못한다. 공룡이 바닷물을 먹었을 리가 없다. 공룡이 살았던 무렵 한반도 주변에는 바다가 없었다. 고성 앞바다는 당시 호숫가였다.

가족 단위로 방문하는 주말과 달리 평일에는 단체방문객이 많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아이들은 손에 시험지 같은 것을 들고 있다. 선생님들이 사전 답사 후 면밀히 준비한 질문지다. 펑펑 터지는 와이파이를 맘껏 이용하는 아이들도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질문지의 답을 찾기 위해 열심이다. 흥미 없는 아이들에게 뭔가 억지로 보여줄 필요까지는 없다. 문제는 열심인 아이들이다. 선생님들이 잘 짜주신 질문지를 받아든 순간 아이들의 질문은 사라진다. 이들은 선생님이 묻는 질문에 해당하는 답을 찾고 얼른 다음 코너로 간다. 그렇다. 속도가 생명이다. 평소에 익힌대로 하는 것이다. 학습효과를 고려한 선생님의 질문지는 정작 아이들이 질문할 기회를 앗아간다.

자연사박물관은 학습공간이다. ‘학습’이란 질문에서 시작한다. 아이가 묻기 위해서는 부모의 질문이 최소한으로 줄어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질문의 예를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질문에 답하는 것도 피곤하지만 질문 그 자체도 에너지가 많은 드는 활동이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3층으로 이뤄진 큰 공간이다. 모든 코너를 진지하게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금씩 나눠 보고 질문한 아이에게는 맛난 것과 멋진 기념품으로 보상을 하자. 그래야 또 오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이들에게 질문할 시간을 충분히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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