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여행을 다니며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며 보고 느꼈던 감정들과 경험들을 매화라는 소재에 담아 아무것도 없는 화면에 새롭게 창작하여 표현하는 일을 한다.

서른 즈음 2009년부터 많은 갤러리들이 나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지난 5년 동안 여러 번의 개인전과 다양한 국내·외 아트페어, 특별 기획전등에 초대되는 호강을 누리며 화가가 느낄 수 있는 행복함과 성취감들을 맞이하며 하루하루를 즐겁고 바쁘게 지냈다. 하지만 많은 전시에 노출 되다보니 매번 작품을 본 사람들의 눈에 만족시키고 싶은 욕심에 늘 새로운 그림을 창작해야하는 고통과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작품 평들이 크나큰 부담과 불안한 마음은 지속적으로 나를 무겁게 누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작년에 3년 만에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전시 중에 두 번의 큰 특강과 초대전이라는 중압감도 함께 짊어져야했기에 몸과 마음은 무리한 상태였다. 게다가 전시가 끝나자마자 아트페어에 출품해야하기에 낮에는 전시장에 나가 관람객들과 시간을 가지고 돌아와서는 새벽까지 작업을 마무리해야하는 상황까지 겹쳐서 몸과 마음이 아픈 것은 둘째 치고 뭔가에 대한 의욕과 의지는 바닥이 나있는 상태였기에 그저 시간이 흘러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에 따른 허탈감과 공허함도 함께 찾아와 그렇게 좋아하는 화가로서의 자부심과 행복함이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전시기간이 끝날 무렵 아픈 몸으로 갤러리 데스크에 앉아 있는데 갤러리 문이 열리면서 허리가 90도 가까이 굽은 할머니 한분이 지팡이에 의지해 전시장을 둘러보시기 시작했다. 낯익은 모습이기에 생각해보니 전날 판매하는 도록을 그냥 드렸던 분이었다. 한 바퀴를 돌고 나에게 다가와 어제 일을 이야기 하시며 도록 한 권을 더 얻으러 오셨다 하신다. 그래서 들고 가실 수 있는 만큼 챙겨드리겠다고 하고 의자를 내어드리며 쉬었다 가시라고 청하였다. 그 일이 내 인생에 큰 깨달음을 준 어르신을 만나게 해주는 시작점이 될 줄이야…

자리에 앉으신 할머님은 혼자서 계속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신다. 전날 가져간 도록은 누워있는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가지고 싶다하여 선물로 주고 본인은 한 권 더 받으러 왔다는 이야기부터… “작품들이 아름답다”, “고상하다” 하지만 “슬프다”라는 작품에 대한 느낌 그리고 본인 본 매화 중에 제일 이쁘다는 칭찬까지… 듣고 있다 보니 갤러리 직원인줄 알고 속마음을 계속해서 던져주셨다. 듣다가 민망하기도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사실대로 “이 그림을 그린 화가입니다”라고 하며 인사를 드렸더니 내 두 손을 꼭 잡으시며 귀한 손 한번 만져보자고 하셔 나를 당황케 만들었다.

“내 나이가 몇 인줄 아느냐? 난 93세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른다. 그래서 아름다운 그림이 생각이 나서 한 번 더 보러 멀리서 찾아 왔다”는 말씀에 나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귀한 그림 많이 그려달라는 말씀을 남긴 채 홀연히 갤러리를 떠나셨다.

내 눈가는 눈물로 그리고 뭔가 모르는 죄송함과 벅참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아프지 않고 내가 살기 위해 그리고 그림 그릴 때가 행복하기에 계속 붓을 잡고 있다 생각했는데,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이렇게 좋아해주시는 마음에 밀려오는 감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당황하여 한동안 멍하니 나의 시선은 전시장에 걸려있는 그림들에게만 멈춰있었다.

그 뒤로 많은 생각과 다짐을 하며 굳은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화가가 되려고 실행중이다. 어느 누군가 한 명이라도 내 그림을 보고 진심으로 감동받고 또 다시 한 번 더 찾아올 수 있는 그림. 그리고 관람자의 마음을 힐링 해 줄 수 있는 따뜻한 친구 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어야겠다는 마음 그리고 화가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향을 주위에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얼마 전 화가 성영록과 갤러리 리더스 수가 공동기획 하여 ‘이른둥이 희망나눔 자선전시’를 2주간 전시를 했었다. 이른둥이(미숙아)들과 가족들의 힘든 상황을 조금이나마 널리 알려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은 홍보자 역할과 동시에 관람객들의 모금과 판매된 작품 금액의 일부를 기부하는 일을 함께 했다. 전시가 끝난 뒤 아름다운 재단에 직접 찾아가 기부를 하며 이것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일로 나눌 수 있는 시작이라는 큰 자신감과 값진 경험이었다.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예술을 하는 화가로써 책임과 사명을 가지고 나는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진중한 마음을 갖고 진심으로 그림을 통해 많은 사람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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