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오늘 이 하루, 아주 미약할지라도
그 질문의 답과 관련 있는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하자.
우리 모두는 죽을 날을 모를 뿐
모두 시한부 인생이기에, 인생은 유한하기에.

 

‘사람이 가진 가장 교만한 착각은 내일이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란 말을 어디선가 듣고 고개를 끄덕인 적 있다. ‘내일 오후 1시에 만나.’라는 약속에는 내일 오후 1시까지 자기 자신이 살아있을 거란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눈을 뜨고 다시 잠들 때까지 ‘내일’을 생각하고 심지어 계획한다. 그리고 그것이 생각한 대로 진행될 것에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의 인생은 유한하다는 것을.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무한할 것처럼 사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자, 지난 2013년을 3일 남기고 남편과 함께 한 상조회사의 ‘임종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도착하자마자 직원분의 안내에 따라 영정사진에 쓰일 사진을 찍고, 임종 체험 전 짧게 오리엔테이션 겸 짧은 강의를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죽는 장면을 생각할 때에 영화 같을 거라 생각합니다. 자신은 침대에 누워 있고, 그 주위에 사랑하는 이들이 둘러싸고 있어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인생을 마감할 거라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축복스럽게 죽는 사람은 0.001%도 안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이 아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갑작스럽게 맞이하지요. 또, 유서는 어떤가요. 많은 이들이 언젠가 다가올 노년의 삶에 하루 날 잡아, 분위기 있는 노래를 틀고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남은 이들에게 하고픈 말을 한 자 한 자 적으며 유서를 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죽은 이들 중 유서를 남기고 죽은 분은 5% 미만입니다. 오늘이 여러분의 유서를 적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날입니다.” 나는 강사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굉장히 미화하여 갖고 있었고, 언젠가 유서도 써야지라고 늘 생각뿐이었지 아직 펜을 잡은 적도 없었다.

강의를 마치고,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일렬로 서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죽음에 대한 몰입을 위해 안내해 주는 직원 분은 저승사자로 분장해 계셔서 알면서도 괜스레 오싹했고, 올라가는 계단은 하늘나라 올라가듯 구름과 천사 이미지들로 꾸며져 더 몰입되었다. 위층에 도착하니, 수십 개의 관들이 열거되어 있었다. 나는 내 관 앞에 앉아 책상 위에 놓인 내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내가 죽으면 다른 이들이 바라보며 눈물 흘릴 내 영정사진이었다. 영정사진을 앞에 두고 흔들리는 촛불을 응시하며 나는 유서를 써 내려갔다. 아들에게 남길 글을 적을 때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유서 작성을 마감하고, 관 위에 놓인 수의를 입고서 열려져 있는 관에 들어가 누웠다. 관 안은 생각보다 훨씬 좁고 추웠다. 관 안에서 바라본 천장은 적적하고 쓸쓸했다. 그 때였다. 직원분들이 관 뚜껑을 덮으셨다. 관 뚜껑을 연 체로만 체험하는 줄 알았던 나는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관 뚜껑 안에 있는 나는 한없이 무기력했고 더 이상 무엇을 시도할 수 없었다. 밖은 상여소리가 울려 퍼지고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좁고 추운 관 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나는 눈을 감고 관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 몇 분 안 되는 시간이었을 텐데, 그 짧은 순간에 지난 인생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좋았던 순간들, 후회되는 순간들이 뒤범벅되어 있었다. 다시 산다면 이러한 인생을 살아야겠단 그림도 그릴 무렵, 밖에서 강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후회되었던 삶을 이 관과 함께 묻어버리고 이제 관 문이 열리면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사시는 겁니다. 그럼, 하나! 둘! 셋!” 관문이 열리고 나는 일어났다. 마치 새로 태어난 듯이 말이다.

나는 ‘나중에’란 말을 달고 살던 사람이었다. 나중에 우리 집이 생기면 이거 해야지, 나중에 그거 먹어 봐야지 부터 부모님께 나중에 사랑한다 말해 드려야지, 부모님과 나중에 형편 좋아지면 가족 여행 가야지 까지 늘 하고 싶은 것은 ‘나중에’란 말과 함께였다. 그런 내가 임종체험 후, 내게 묻게 되었다. “나중에 언제?”라고 말이다.

임종 체험 후, 나는 주어진 오늘을 살아내고, 잠들기 전에 내일 하루를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기도한다. 그리고 아침에 눈 뜨면 다시 하루가 주어졌음에 감사한다. 오늘 주어진 이 하루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다시 오지 않을 유일한 오늘이다. 내일이란 있을 수 있다면 너무나 감사하지만,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이 글을 읽는 당신, 10초만 시간 내어 손가락을 코끝에 대어, 자신의 코에 숨이 들어갔다 내쉬어지는 것을 확인해 보라. 당신의 생명이 이 순간 살아있음을 느껴보자. 그리고 생각해 보자. 당신의 이 코 끝 호흡도 언젠가는 멎는 날이 올 것이다.

당신의 코끝 호흡이 멈추는 그 날,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가? 아니면 무엇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겠는가? 주어진 오늘 이 하루, 아주 미약할지라도 그 질문의 답과 관련 있는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하자. 우리 모두는 죽을 날을 모를 뿐 모두 시한부 인생이기에, 인생은 유한하기에.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