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세상에서 받은 것이 많은데 내 마음과 정성을 이젠 이 세상에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즐겁게 내놓자고 생각하고 그냥 저지른다.

 

최근에 해외여행이 잦았다. 러시아, 중국, 말레이시아, 네팔 등지였다. 그 중에서도 주로 가난한 사람이 많은 지역을 여행하였다.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자선의 목적으로 진출해 있는 천주교 수도회들의 초청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00여 년 전 가난한 우리를 도우러 왔던 유럽 선교사들처럼, 우리나라가 경제적 성장을 어느 정도 이룬 이제는 우리가 세계 가난한 곳을 찾아가 그들을 위해 자선 사업을 하게 된 것이다. 가톨릭 관련 설계를 해오며 알게 된 수도회, 또는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사제나 수도자들의 초대를 받아 가게된 것이다. 그들은 현지에서의 활동에 필요한 집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오래 전에 마련한 집이 낡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헐고 다시 짓는 게 나은지, 기증받은 땅에 집을 어떻게 지을지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데, 집과 관련된 일은 돈도 많이 들고 잘 모르기도 하기 때문에 도움을 청한다는 것이다. 자선사업을 하는 종교단체는 늘 경제적으로 어렵다. 이들의 사업은 대부분 후원을 받고, 충분치 않은 데서 나누고, 몸으로 때우는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 돈 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들은 설계비를 제대로 주고 좋은 집을 짓고 싶으니 설계비를 제대로 뽑아 청구하라 한다. 다만, 언제가 될지, 다 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최선을 다 하겠다 한다.

우리 사무실이 일이나 많든지 수익이나 좀 나든지 한다면 어려운 사람 돕는다는데 한 자리 참여하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라 할 만 하겠으나, 요즘은 불황이 계속되어 어려울 때라 많은 갈등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도움을 청하는 것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여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여러 곳이 되었다. 실은 마지못해 하는 마음 반, 봉사 정신으로 기쁘게 하는 마음 반이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내가 가진 것이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베풂의 희열은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이런 여행은 일이기 때문에 긴장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넉넉해져 부담이 덜 되는 즐거운 여행이다. 현지답사를 하며 땅을 보고 집을 보고 그들이 보살피는 사람들도 만난다. 없는 데에 여기저기에서 답지하는 후원금과 물품을 나누어 주며 먹이고 가르치고 치료해주며 몸으로 봉사하는 그들을 보고,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기만 하는 또 한 편의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너무 잘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설계비를 제대로 다 받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기는커녕 공짜로 해 주겠다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돈다. 그래도 직원 월급은 주어야 하고 외주비도 주고 공과금도 내야 하는데... 내 안에서 치열한 싸움이 일어난다.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신이 나다가도 직원들 월급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돈 많이 벌어 은퇴하면 봉사활동도 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겠다고 늘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돈을 많이 벌 자신도 없고 그때 가서 남을 돌볼 힘이 있을지도 자신이 없다. 그런 여건과 기회가 나에게 주어질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걸 다 갖추고 할 수는 없는 게 세상 이치인 것 같다는 생각이 이제는 든다. 지금 여기에서 하자.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내 사정 되는대로 하자. 우리가 먹고 사는 건? 그거야 뭐 어떻게 되겠지! 아무리 어렵다 해도 지금껏 굶은 적은 없으니까. 그래도 세상에서 받은 것이 많은데 내 마음과 정성을 이젠 이 세상에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즐겁게 내놓자고 생각하고 그냥 저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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