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봄날입니다.
이 번 주말에는 모처럼 열 일 다 제쳐두고,
산으로 들로 꽃 보러 가세요.
거기, 학창시절의 아름다운 당신이
꽃처럼 서 있을 테니까요.

바야흐로 봄입니다. 원래 개나리 피고, 진달래 피고, 벚꽃 피는 건데 올해는 더운 날씨 때문인지 개나리와 진달래, 그리고 벚꽃이 한꺼번에 같이 피는 것 같습니다. 출근길에 일부러 여의도를 돌아서 왔는데, 국회의사당 윤중로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이번 주가 절정인 듯 하고, 다음 주면 다 질 것 같습니다. 산에, 들에, 길가에 온통 봄 꽃 천지입니다. 만화방창(萬化方暢), 역시 봄에는 온갖 꽃이 피어야지요.

꽃피는 4월. 대학시절 인문대 잔디밭이었을까요, 기숙사 앞 공터이었을까요. 진달래, 벚꽃 향 기 진동하는 곳에서 무리는 무슨 이야기를 그리 많이 나누었을까요. 목련도 하얗게 꽃을 터트리는 날,  곧 다가올 축제를 연습하는 사물놀이 동아리의 꽹가리 연습소리가 귓가에 맴돌던 그 봄 날. 선배 동기들과 그 많은 소주를 마셔가며, 반쯤 취해 바라본 하늘은 참으로 눈부시게 푸르고, 학교 뒷동산에 진달래는 온통 붉었습니다.

옛날 이때쯤이면 우리 조상들은 계곡에 솥을 걸고, 진달래를 따다가 화전을 부쳐 먹었다고 합니다. 작년에 제가 해서 먹어보니, 아주 맛있는 음식은 아닙니다만, 진달래의 고운 색깔과 찹쌀가루가 어우러져서, 봄의 흥취에 그만이더군요. 아주 멋있는 음식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제는 거의 사라진 음식이어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 해먹지 않고서는 어지간해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고 말았습니다만. 그리고 이 화전을 안주로, 진달래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진달래꽃은 전국의 산야 어디에서나 피는 까닭에 그 채취가 용이하였으므로, 진달래꽃을 이용한 술은 신분의 구별 없이 가장 널리 빚어 마셨던 가장 대표적인 ‘봄철 술’이었다는 거지요. 진달래향이 물씬 나는 진달래주. 참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이런 멋진 흥취가 너무 오래 잊혀진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는 매일 일에 쫓기고, 하루 종일 정신없이 약속에 시달리다가, 밤이 되면 담배연기 자욱한 어느 콘크리트 건물 지하에서, 뭘 말려놓은 것인지도 모르는 마른안주나, 어느 철인지도 모르는 하우스 과일을 안주로 양주에 폭탄주에 밤을 지내다가 지쳐 집으로 퇴근하지요. 어쩌다 출근길에 ‘어, 꽃이 피었네’란 생각은 합니다만, 주말에 문득 생각하면 꽃은 모두 지고, 봄도 훌쩍 가버립니다. 사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잘 모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곧 꽃은 집니다.
그러니까 말이지요, 길가다 소담스럽게 핀 진달래 만나시거든, 차 세우고 내려서 꽃 앞에 앉아 말간이 들여다보세요. 옛날 어릴 적 진달래 따먹던 생각도 해보고, 학창시절 연애할 때 진달래 찾아다니던 생각도 해보세요. 꽃 좋아하고, 꽃 시도 좋아 중얼거리던 낭만적인 당신은 어디로 갔나요?

봄날-김용택
나 찾다가/ 텃밭에/ 흙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참 좋은 봄날입니다. 이 번 주말에는 모처럼 열 일 다 제쳐두고, 산으로 들로 꽃 보러 가세요. 거기, 학창시절의 아름다운 당신이 꽃처럼 서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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