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라 그랬지?” 뵈러 가서 손을 잡으면 아버님은 투명한 눈빛으로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물으셨다.

“어디서 오신 분이신지? 미안합니다. 내가 기억을 잘못해요.”라고 사과하시고 곧이어 “여기가 어딘가요? 집에 언제 가요?”라고 물으셨다. 아버님께 단순한 대답을 반복하면서 나는 자주 서글퍼졌다. 저는 막내며느리입니다. 은구 어미예요. 은구는 제 딸입니다. 여기 사진에 있는 아기가 그 아입니다. 저를 처음 보신다구요? 저는 아버님 댁에 시집온 지 20년도 넘었습니다. 여기가 아버님 집이에요. 10년도 넘게 사셨는걸요.

아버님은 누구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가족은 누가 있어요? 군대는 다녀오셨나요? 언제부터인지 나도 아버님께 질문을 드렸다. “내 이름이요? 그게 알았는데 생각이 안 나요. 내 집은 여주군 가남면 금당리. 결혼은 했는데 아이들이 다 어디로 갔나? 저기 저 할머니가 다 알아요. 군대? 군대가 뭐지? 아…거긴 다녀왔지…내가 장교였는데 전장도 치르고 그건 에이, 기억하고 싶지가 않아요. 다 시시한 일인걸. 그런데 내 지갑은 어디 갔나? 분명 뒷주머니에 잘 넣었는데…”

마포구 공덕동 105-135번지. 아버님, 생각해보세요. 빨간 벽돌로 된 이층집입니다. 연탄을 넣어두는 지하실로 통하는 문이 집의 우측 담에 나있고 지면에서 다섯 계단 위에 파란 대문이 달린 집이요. 한 쌍의 사자 입에 귀걸이처럼 둥근 손잡이가 대문에 달려있었죠. 대추나무가 흐뭇하게 키를 세운 앞마당에는 생선대가리와 누룽지 따위를 팍팍 끓여 먹여 밥값 이상을 해내는 누렁이가 묶여 있었어요. 그 누렁이는 식구들이 들어오면 뒷다리로 일어서서 실한 몸을 활짝 일으켜 세우고는 황금 빗자루처럼 탐스럽고 힘이 넘치는 꼬랑지를 홰홰 내둘렀죠. 답답하다고 한사코 현관문을 활짝 열어 두시던 시할머니께서 귀하게 여기던 장독 뚜껑 두어 개를 깨뜨리고 어설픈 도둑이 어느 그믐밤 담을 넘어 든 적이 있었고 그 일 이후 쇠꼬챙이를 담장 위에 빙 둘러 꽂았지요. 장독대 위 채반에 널어놓은 자반을 노리며 지붕 위를 살금살금 딛던 괭이들이 유난히 울어대던 그 집의 밤도 기억나네요. 자식들 알뜰하게 키우고 시골의 부모님을 모셔 오려고 아버님께서 1978년 집장사를 부려 반듯하게 손수 지으신 집. 가을이면 고추를 바짝 말려주는 햇살이 옥상 위로 빛나고 이층 베란다에 하얗게 빨아 넌 이불 홑청들 사이로 바람이 살랑이며 대추나무 가지를 흔들던 이층 방 창가. 거기서 기타를 치며 사춘기를 보낸 막내아들이 저랑 결혼해서 형들이 모두 출가한 빈방에 차린 신방. 거기가 제 본적지인데. 장마 진 후에는 기와가 서너 장씩 벗겨져 비가 새면 한사코 사다리에 아들을 태워 지붕을 손보게 하고 그걸 지켜보셨던 아버님의 자랑스러운 어깨. 그 집이 생각나지 않으세요?

“새댁 이야기 잘 하네요. 그런데 이젠 졸려요.” 아버님 좀 더 들어보세요. 듣다가 주무셔도 됩니다. 지금은 공덕동 로타리에 지하철이 들어오고 ‘L 캐슬’이 지어지고 ‘꿈에그린’ APT가 들어섰죠. 그래도 제 기억 속 지도에는 삼신할머니가 된 ‘이순희 산파’가 여전히 새빨간 갓난아이들을 받아내고, 볕이 들지 않던 뒷골목 하꼬방에는 ‘장미, 밤차’ 따위의 빨간 페인트로 칠한 간판의 술집들 앞에 아가씨들이 앉아있고, 시장통 끝에 모서리 해진 만화들이 즐비한 ‘고바우 만화방’이 있어요. 교차로 머리 위를 지나는 철길로 새까만 기차가 황혼녘 문득 소리 지르며 멀리멀리 내달리던 곳. 구수한 된장이나 시큼한 김치찌개 내음새가 어귀를 흥건히 적시던 골목. ‘옥천탕, 대성반점, 지물포, 필승 탁구장, 백제 다방, 삼강 하우스’같은 가게들 사이를 쏘다니며 깔깔대던 단발머리 여학생들. 골목 끝 전봇대 아래 가방을 던져두고 봄이면 장닭처럼 쌈박질을 했던 남학생들. 누런 센베이 과자 봉지를 들고 아버지들이 귀가하던 그 골목. 자정이 넘으면 한 폭의 그림처럼 일순간 고요하고 아득해지던 골목길이 생각나지 않으세요? 그 집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새댁은 집이 어디요?” 복사꽃이 만발하여 이름이 생겼다는 동네에 살아요. 하지만 저는 한 그루의 나무도 없고 마당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대추나무도 베고니아도 과꽃도 심을 데가 없어요. 황금 꼬랑지를 가진 누렁이 대신 밥을 먹이지 않는 강아지를 방안에서 키워요. 이불은 널 데가 없어서 매일 개서 밀어놓죠. 장독대요? 항아리도 없고 메주도 띄우지 않고 장도 담그지 않아요. 고추는 더 이상 집에서 말리지 않습니다. 없는 게 많지만 있는 것도 많아요. 커다란 TV가 있고 김치 냉장고랑 와인 냉장고도 있어요. 사자 한 쌍이 지키던 대문 대신 누르면 얼굴까지 다 보이는 모니터가 있어요. 104동 501호에서 107동 1302호, 106동 901호, A동 703호…로 이사를 다녔어요. 아범이 지은 집은 아니고 잠시 빌려 사는 집입니다. 기와를 손보지 않아도 되고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그믐인지 대보름인지 잊어도 되는 집이에요. 앞으로 얼마 더 이사 다니게 될까요? 제집은 언제 생길까요?

“그런데 대체 네가 누구라 그랬지?” 아버님, 저도 그걸 알고 싶어요. 저는 대체 누구일까요? 파란 대문집 막내 며느리인가요? 104동 501호에 새로 이사 온 여자인가요? 최후의 시간에 내 집은 어디로 기억될까요? 1302호, 901호, 703호… 어떤 숫자를 제가 기억할까요? 문득 알고 싶어요. 아버님의 음성을 이제는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오늘따라 그리워져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다가 거울에 비친 당신의 얼굴을 보고 한없이 상냥하게 “안녕하십니까? 실례하겠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던 아버님의 진지한 표정이 그리워요. 저는 기억할게 별로 없는 삶을 살고 있어요. 아버님께서 늘 데려다 달라던 그런 집이 제겐 없다는 걸 문득 알게 됐어요. 마포구 공덕동 105-135, 그곳은 무사한지 이번 주말에 가보아야겠습니다. 마당의 대추나무는 아직도 흐뭇한지, 누렁이가 뻗대며 남긴 껍질의 상처도 남아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기억할 집은 어디일까요? 아마도 아버님 사랑을 듬뿍 받은 그 집, 내가 새댁이 되고 첫아이를 낳았던 기억을 가진 그 집이 아닐까 합니다. 그 집을 되찾고 싶은 것은 봄이 오기 때문이겠죠? 괭이처럼 살금살금 옛날 집을 찾아가 볼래요. 아버님, 저랑 같이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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