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축에는 각각의 독립된
문화계, 역사계, 인간계, 자연계, 그리고 신화계가 존재한다.

 
건축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건축은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 그릇, 기능, 방법이다. 건축 자체에 목적성을 둘 경우, 그 건축은 인간과의 관계가 소원하게 된다. 건축의 기능적 속성을 생각할 때 건축은 결코 목적 자체가 될 수 없고, 사용자를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써 파악되어야 한다.
시, 소설, 수필 등의 문학작품과 회화, 조각, 그리고 작가 본인이 참여하는 행위예술까지도 포함된 모든 장르의 예술 작품들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 되었든, 작가가 보는 세상의 모습이 되었든, 작가의 사상과 작가의 의도가 하나의 방법으로 표현된 하나의 객체로 취급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작품 자체가 생명을 지니게 된다. 즉, 작품 자체가 하나의 생명으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건축사는 그 작품에 대해 설계 의도와 배경에 대해 설명할 수는 있지만 건축은 완성되고 난 후 사용자의 것으로 돌려지며, 사용자의 수준으로, 사용자의 요구와 기능으로 살아나가는, 즉 작가에 종속된 소유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객체로서 이용자와 함께 존재하게 됨을 상기해야 한다.
이러한 건축과 예술 작품과의 관계를 살펴볼 때 건축은 더욱 작가의 소유물이 아니며,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건축은 작품과 사용자와의 관계의 속성으로 인하여 다른 예술 장르와 구별된다. 건축이 작가의 의도와 사상 등이 배인 디자인, 건축 언어와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할지라도, 건축 자체가 개별적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사용자들의 시선을 한눈에 강하게 끌어당기는, 그러나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결국 질리게 하는 엉뚱하고 이상한 건축이라면 그것이 작가의 실험적 의도의 결과라고 하여도, 사용자에게는 작가만을 위한 작품일 뿐이다. 건축은 잠시 감상하거나, 보거나, 만져보는 일시적인 대상이 아니라, 사용자가 직접 물리적, 정신적으로 몸담는 사용의 대상이기 때문에 건축은 다음과 같은 통섭적 영역체계들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건축은 인간사의 한 일부로서, 인간사 자체에 그 태생적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건축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철학, 예술, 기술 등의 모든 인간사를 망라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건축에 관련된 이러한 기본적인 다양한 요소들을 ‘건축적 사고체계의 계(界)’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초인간적 실체로서 한 사회가 보편적으로 공유하고 지향하는 가치체계로서의 ‘신화계(神話)’로부터 > ‘자연계(自然界)’ > ‘인간계(人間界)’ > ‘역사계(歷史界)’ > ‘문화계(文化界)’로 이어져 ‘건축계’로 귀결된다고 본다. 당 시대, 당 장소, 그리고 기타 제반요소들의 조건하에서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로서의 건축은 건축적 결과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문화계가 있고, 그 문화계 내에는 역사계가, 역사계 내에는 인간계가, 인간계 내에는 자연계가, 자연계 내에는 신화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최초 신화계는 자연계에게, 자연계는 인간계에게, 인간계는 역사계에게, 역사계는 문화계에게, 문화계는 건축계에게 각각 내부에서 외부로 영향을 미친 영역체계의 최종결과가 건축이라고 해석하는 개념이다. 건축의 관련 영역을 파악함에 있어 이와는 반대로 즉, 신계, 자연계, 인간계, 역사계, 문화계 그리고 건축계 내부의 순으로 건축을 해석하는 일반적인 방법과는 다른 것이다. 이 방법은 건축의 개별적 통섭적 관계를 파악하는 관점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본고에서 제안하는 방법은, 모든 건축에는 각각의 독립된 문화계, 역사계, 인간계, 자연계, 그리고  신화계가 차례로 존재하고 있다는 개념이다. 이러한 해석체계에 의한 통섭적 해석 방법론은 건축의 본질에 가까워 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본고의 계의 개념과 통섭적 사고체계가 이해되고 구현됨으로써, 비목적성을 지향하는 건축이 정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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