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태생적 속성을 근거로 한 통섭적 공동 작업을 통해
건축의 문화적 콘텐츠가 무궁무진하게 생성될 수 있을 것

영화 <건축학 개론>의 열기는 뜨거웠다.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서 건축의 물리적, 정신적 중요성을 지적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건축이 담아내는 인생의 추억과 사랑을 우리는 잔잔한 감동으로 즐길 수 있었다. 또한 인간의 삶을 담는 건축의 일면을 차분히 생각하게 하는 사회적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러한 경험에서 우리는 건축의 태생적 속성을 본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속에서 생성되는 건축의 본질이다. 즉 건축과 타 분야와의 통섭적 관계이다. 통섭은 사전적 의미로 큰 줄기(통;統)를 잡다(섭攝), 즉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의미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를 일컫는다.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이 사용한 ‘컨슬리언스(consilience)’를 최재천 교수가 번역한 용어-
 건축 분야에서의 통섭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돌이켜 보면, 근대 문명의 출발점이었던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통합된 기술적 시스템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다양하고 복잡한 기술들을 동시에, 특히 양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분업적 처리는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분업적 산업구조 시스템은 현대에 들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지적되었다.
  특히 건축에 있어서는 종합적 학문의 통섭이 대두됨에 따라, 다양한 분야들 간의 상호관계에 있어 태생적인 속성을 기저로 한 이종(異種)간의 교배에 의해 우성적 DNA로의 진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건축과 통섭적 관계의 가능성이 있는 장르는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사회, 과학, 기술 등 거의 모든 인간사에 걸쳐있다. 또한 건축의 문화적 속성을 본다면 문학, 음악, 영화, 무용, 연극, 사진 등의 분야와 구체적인 통섭적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건축 자체의 태생적 속성의 다양성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건축에서의 이러한 통섭은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도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근대 건축에 들어서서 건축사들은 사회적 안정과 새로운 건축 재료 및 공법으로 근대건축을 이전 건축과는 다르게 변화시켰다. 건축사들은 이러한 추세와 격려에 힘입어 새로운 아르누보, 시세션 등 신건축 사상을 도출하였으며, 새로운 미학적 이론을 기반으로 한 기묘한 형태를 과감하게 실험하였다.
 전통적인 예술사상은 급속히 변하는 위기적인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고, 각종 건축적 실험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건축의 새로운 기술적 차원의 진보와 응용예술 운동의 문화적 차원의 기반에 의거하여 진전되었다.
 신건축 당시에 고집스럽게 통섭의 개념을 실행했던 벨기에의 예술가 앙리 반 데 벨데(Henry van de Velde)는 추상과 감정이입의 개념으로 건축, 회화, 조각, 미학 등의 통섭을 시도하였다.
 프랑스 구조주의 언어학자 소쉬에르(Ferdinand de Saussure)의 이론은 의미자(意味子)와 의미소(意味(素)의 개념으로서 건축언어로 정착된 지 오래다. 소위 건축 언어학이라고 불리는 통섭적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건축과 음악의 관계는 매우 밀접한 구조적 통섭관계를 맺고 있다. 건축의 구성요소와 형식은 점, 선, 면(입체, 공간), 색, 재질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각각 건축의 점(点)은 음악의 음(note)으로, 선(線)은 선율(melody)로, 면(面)은 화성(harmony)으로, 색은 음색(tone color)으로, 재질은 기조(基調, texture) 등으로 그 유사성과 특성이 파악될 수 있다.
 인간의 청각이라는 차원과 시각이라는 차원의 유사성을 살펴보고자 했던 이러한 예는 1958년 브뤼셀 만국 박람회장의 '필립관(Philip Pavillion)'의 경우다. 이 건물은 프랑스의 건축가 르 꼬르뷔제(Le Corbusier)와 작곡가 야니스 크세나키스(Yannis Xenakis)에 의해 공동으로 설계되었다. 음악적인 규칙과 배열에 의해서 직선적인 연속면들이 수직적으로 설계된 획기적인 형태의 건물로 평가됐었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외국 굴지의 설계 사무소에서 철학, 문학, 사회학,  미학 등의 관련 전문가가 건축 설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음은 건축의 다양한 장르와의 통섭 가능성과 필요성을 실감하게 한다. 이러한 건축의 태생적 속성을 근거로 한 통섭적 공동 작업을 통해 건축의 문화적 콘텐츠가 무궁무진하게 생성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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