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이상한건지 내가 이상한건지
아니면 이 나라가 이상한건지 잘 알 수는 없으나
이상해도 한참 이상한 5월임에는 틀림없다.

5월은 정말 계절의 여왕이던가. 마음 편하신 분들에게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모두에게나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특히나 숫자와의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해마다 5월이면 일반사업자들은 소득세 확정 신고 등으로 일 년 내내 고생한 대가에 대해 위로는 고사하고 오히려 엄중한 숫자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저 마냥 날씨 좋은 것만 즐기기에는 지난 해 실적에 우울할 뿐인데 꼬박꼬박 내야 할 세금 때문에 깊은 한숨이나 안 쉬게 되면 그나마 다행일지 모른다. 하물며 열심히 살아온다고 살아온 사람들일수록 그 상실감은 더 할 것이고 때늦은 후회가 한숨으로 바뀌면서 결국은 국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정점을 찍는 것도 아마 이 때일 것이다.

이런 일은 대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해마다 5월말 6월초가 되면 해당연도 졸업생에 대한 취업률 지표를 집계하여 발표하는데 이게 그야말로 전쟁이다. 대학평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취업률이고 그것이 낮을수록 재정지원 제한대학이나 퇴출대학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애매한 지방이나 수도권의 사립대학에게는 학교의 재정문제나 존폐여부까지 걱정해야하는 심각한 지표가 아닐 수 없다. 대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학과는 학과대로 난리가 아니다. 정원 감축이나 심지어는 폐과라는 무지막지한 칼날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놈의 취업률을 어떻게 해서든지 올려야하는 절체절명의 대명제가 학과 앞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도무지 방법이라는 것이 없다. 도대체 경제를 이 지경까지 만들어 놓은 사람들에 대한 원망도 그 다음이다. 대학을 4년이나 5년씩 다녔는데 나름대로 좋은 직장을 가겠다고 버티는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도 역시 그 다음이다. 취업률이라는 숫자놀이 때문에 큰 학문을 배우는 대학교라는 것이 마치 취업전문학교로 전락하고 있다는 푸념도 역시 그 다음이다. 무조건 숫자를 올려야하기 때문이다. 이상도 필요 없고 논리도 먹히지 않는다. 졸업생이 취업을 못하고 있으면 그만큼 취업률의 분모가 높아지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도 취업을 권장하거나 혹은 시켜주어야 한다.

학생들이 못하면 교수들이 나선다. 여기저기 줄을 대거나 인맥을 총동원하여 무지막지한 낙하산 부대를 투하시킨다. 상대 회사의 재정 상황이나 여건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 버텨내고 있는 회사들에게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미안함도 이미 미덕이 아니다. 교수로서의 품위도 없다.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구조를 하겠다는 학생을 건축사사무소에 보내기도 하고, 공무원 시험 보겠다고 버티는 아이들을 대학원을 진학시키기도 한다. 그나마 전공을 찾아가면 다행이다. 전공과는 거리가 먼 턱도 말도 안 되는 직업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른바 4대 보험만 되면 그것이 인턴이건 알바이건 가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졸업생을 극단적으로는 취업률의 분모를 줄이기 위해 졸업을 안 시키거나 유예시키기도 한다.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 대학이라는 것도 전공이라는 것도 참으로 무색해지는 그런 시기인 것이다.

그렇다고 청년 구직자 100명 가운데 서류전형 합격자는 49.2명, 면접전형 대상은 16명, 최종 합격자는 불과 3.1명이라는 이른바 대졸 신입사원 경쟁률 32대 1인 이 시기에 60%나 70%라는 취업률 수치가 말짱 거짓말이라는 것은 누구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얼마나 거품이 많고 얼마나 학생들의 경향과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직업이 많은지도 역시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 수치가 얼마나 학생들을, 대학교를 나아가서는 교수들을 더 나아가서는 우리 국민들을 우울증과 화병에 빠지게 하는지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건축 전공이라고 이 수치가 달라질까. 요즘 같으면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것만이 아니다. 워낙 취업을 권장하는 사회이자 대학이다 보니 취업이라는 금쪽같은 무기를 품고 있는 회사들은 갑중에서도 상갑이 아닐 수 없다. 배짱도 이런 배짱이 없다. 가뜩이나 취업이 안 되어 상심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서류전형은 뭐고 면접전형은 또 뭐란 말인가. 그렇게 하고도 100명 중에 3명만 채용하면 어쩌란 말인가. 시간이나 비용의 낭비를 넘어서 전문교육을 받은 학생들에 대한 조롱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이 꼴 저 꼴 보고 싶지 않아 그저 책상머리 지키면서 평생이 보장되는 공무원 시험 준비에 목을 매는 아이들도 그저 이해가 갈 뿐이다. 추락하기만 하는 건설경기 속에서 취업 한 번 하자니 회사들의 갑질은 보고 싶지 않고 창업이나 하자니 나라가 도와주지 않는데 그저 이 한 몸 편하게 살 길 찾자는 것이 무어 그리 이상하단 말인가. 오히려 만들어 주겠다던 일자리를 못 만들고 있는 이 나라가 더 이상한 건 아닌가. 그것을 성토하지도 않고 질질 끌려만 다니는 학교나 교수들이 이상한 건 아닌가. 양질의 사원을 뽑겠다고 아이들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기업이나 회사들이 이상한 건 아닌가. 졸업생들이 무슨 업보가 있길래 이리도 처참해져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우리보고 뭘 어쩌란 말인가. 이미 정상이 아닌데, 이미 다들 숫자에 미쳐있는데 도대체 뭘 어쩌란 말인가.

학생들이 이상한건지 내가 이상한건지 아니면 이 나라가 이상한건지 잘 알 수는 없으나 이상해도 한참 이상한 5월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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