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누벨의 빛, 야경, 찰나, 원시, 하이테크

▲ One Central Park , 헬리오스탯 패널 ⓒ송하엽

건축가 장 누벨은 신기한 인물이다. 그는 모든 것의 경계를 추구하는 건축가이기 때문이다. 모 아니면 도로 가는 선택에서 그는 양단을 함께 끌고가는 전략을 취한다. 찰나의 이쪽과 저쪽을 건축으로 기록하는 장누벨은 재료의 투명성을 좋아하는 반면 불투명성도 좋아한다. 자연을 표현하며 문화도 표현하고, 새로움과 낯익음, 낮과 밤 등등... 화가가 되고 싶어했으며 건축 공부 후 무대세트 디자인 등 향후 그의 건축적 방향에 시각적 교환과 재료에 대한 탐닉은 기본으로 깔렸다. 그의 건축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나, 최근에 그가 관심을 보이는 자연현상에 대해 집중해서 보겠다.

근대건축을 혐오하는 영국의 찰스황태자는 세인트폴 대성당을 마주 바라보고 있는 장누벨의 One New Change 건물의 디벨로퍼에게 누벨의 디자인을 채택하지 말기를 종용했다 한다. 그러나 누벨은 영국의 17세기의 거리의 복잡함을 한 건물안에 담고자 했고, 현대적 건물이지만 세인트 폴 성당으로 강력한 시각축을 형성하고 있다. 런던의 시각축의 보전에 대한 좋은 해석이라 본다. 이렇게 도시적 맥락을 지킬 수 있는 장 누벨도 그의 건축에서 자연은 계속 탐닉되고 있으며, 그 누구의 건축에서보다도 렌더링에 자연현상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카르티에 재단에서 조경을 담당한 패트릭 블랑셰의 “식물의 벽(Plant Wall)” 작업은 장 누벨의 투명성의 건축개념과 어우러져 조경을 낯설게 볼 수 있게 한다. 1823년에 시인 샤또브리앙이 심은 레바논에서 받은 백향나무를 건물앞에 두고 식물의 벽과 건물의 파사드는 녹음과 투명과 반사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

“당신이 건축가에게 주문할 때, 일련의 것에 관한 많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말해지지 않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말해지지 않는 것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이 늘 있게 되는데, 그것은 게임의 일부를 이룹니다. 이 말해지지 않는 것은 윤리적 차원에서 보면 경제적 개념과 대응되는 어떤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인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 Quai Branly Museum, 패트릭 블랑셰의 수직정원 ⓒ송하엽

장누벨은 존재가 고착되지 않고 규정화되지 않는 찰나와 변화의 생성의 중간적인 상태를 지향한다. 자연을 가두지 않고 20-30년 앞을 보며 놔두는 접근과 그를 세계적인 스타건축가로 만든 아랍문화원의 빛의 조절하는 조리개와 자세는 크게 다르지 않다. 자연이 무쌍하게 변화하듯 그의 건축의 벽패널도 무쌍하게 변하는 하루의 빛을 더 부각한다.

그가 생각하는 자연은 자연과 문화로 나누어지는 패러다임에서의 자연일까? 아니면 더 깊은 차원의 자연일까? 케브랑리 뮤지움에서도 그가 주장하는 키워드는 “존재-비존재 또는 선택적인 비물질화(Presence-Absence or Selective Dematerialisation)”이다. 건물은 굉장히 거칠어보이며 매스와 벽은 마치 아프리카 조각처럼 세련되지 않은데 사실은 하이테크가 적용되었으며 환영적인 건물의 요소가 숲 가운데 벽을 열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이다. 때로는 투명하며 때로는 불투명한 오브제가 야생의 자연에 있는 듯한 모양새이다.

흔히 일본정원에서 볼 수 있는 인공적인 자연미, 인력이 개입된 분재의 매력이 자연과 인공자연의 사이에 있다면, 장누벨의 자연에 대한 생각은 자연과 Sub-Nature, 즉 자연을 이루는 하부의 자연적 작용에 있는 듯하다. 서브네이쳐(Sub-Nature)는 그 주창자 데이빗 기슨에 따르면 습기, 먼지, 웅덩이, 진흙, 잡초, 곤충 등등의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거나, 건축을 형성하는 재료나 개념에 위협이 되는 자연의 하나의 현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태양, 구름, 나무, 바람과 같은 자연과 대조적인 것이다. 주류문화의 부분을 이루는 서브컬쳐들은 그 합을 이루어 하나의 문화의 부분이 되지만, 서브네이쳐는 자연으로부터 보호되는 건축물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위협이 되는 자연현상들이다. 끊임없는 풍화작용, 습기의 공격, 쌓이는 먼지, 잔디에 박히는 잡초, 새와 곤충들의 잠입과 그 배설물들, 현재의 미세먼지 등등 온전한 건축환경을 위협하는 것이다.

▲ One New Change ⓒ송하엽

찰나적 자연의 순간을 포착하는 장누벨의 건축에서는 자연의 시각화를 넘어서서 자연의 생성과 위협적인 면까지 포함할까? 아직은 이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작품집과 스케치에서 드러나는 자연현상에 대한 탐닉은 곧 멀지 않았음을 점치게 한다. 호주에 지은 One Central Park 는 고층건물에서의 벽면수직정원과 더불어 저층부에 천공광을 모아서 전달하는 핼리오스탯(Heliostat)이 설치되어 낮에는 태양빛을 모터달린 거울로 쫓아 아래의 정원에 반사시켜주고 밤에는 장누벨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듯한 조명예술가 얀 커세일(Yann Kersale)이 설치한 LED 불빛의 조명예술이 밤하늘을 배경으로 연출된다. 낮에는 인공태양을 밤에는 인공별빛을 극대화하여 즐기는 것이다. 하늘을 무대로 만드는 것이다.

어찌보면 장누벨은 하이컬쳐와 하이네이쳐(High-Nature)를 구가하는 듯하다. 자연의 아름다룸만을 극대화한다는 것 말이다. 그러나 우리 입맛에 달기만 한 자연이 있을까? 장누벨은 과연 인공자연에 접근했는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건축가보다도 그의 건물을 자연의 위협에 놓고자 하며 또한 자연이 주는 수혜를 극대화한다. 자연으로부터 보호되며 또한 자연에 놓인 듯하게 경계를 알 수 없게 반사율을 낮춘 엔지니어링된 유리면으로 경계를 만들며 또한 경계에 빛을 산란시키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환영을 만들고 또한 의도적으로 현실의 물체를 만나게 하는 그의 수법은 인공과 자연이 나누어져 자연이 피정의 장소로 탐닉되는 건축적 현실을 부정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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