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除夜)’란 단어는 음력이 제격이지만 이젠 양력으로도 어색하지 않다. 서양에서는 ‘New year's Eve’라 하여 이 날을 즐기며 자정에는 Watch-Night bell을 울리며 새해를 경축한다. 한국은 서른세 번을 치는 보신각의 타종행사가 TV를 통해 전국을 중계되면서 제야를 보내며 새해를 맞는 전통으로 굳어지고 있으며 외국관광객의 주요 볼거리로 등장하였다. 이들이 서른세 번의 심오한 의미를 알면 또 다른 감흥을 느낄 것이다. ▲태조는 한양으로 천도한 후 종루를 설치하고 새벽인 5경 3점에 통금해제와 성문을 여는 파루(罷漏)로 서른세 번의 종을 치게 하고, 초저녁인 1경 3점에는 통금과 성문을 닫는 인정(人定)으로 스물여덟번의 종을 치게 하였다. 한국은 중국과 더불어 예부터 하늘의 별자리를 28수(宿)로 나누었다. 따라서 별이 뜨는 저녁시간에 이에 맞춰 스물여덟 번을 친 것은 백성들의 하루를 위로하고 편안한 잠자리, 시쳇말로 하늘나라 꿈을 잘 꾸라는 위로가 들어 있다고 본다. 이는 고종이 황제 즉위식 후 28수를 기로 만들어 의장에 사용한 것으로 천손의 자부심을 나타낸 것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새벽을 여는 파루의 33회 타종은 불교적 또는 민족적인 두 면의 해석이 있으나 그 연원은 불교로 봐야 한다. 불교는 천인(天人)들이 사는 도리천이 4방에 8개씩 32천으로 되어 있으며 중앙에 이를 모두 거느리는 제석천이 사는 선견성善見城이 있어 모두 33천이라 한다. 국조 단군의 할아버지인 환인천제가 사는 곳도 바로 선견성인데, 이는 삼국유사의 저자가 스님인 일연으로, 환인이 제석환인에서 빌어온 것임을 알 수 있다. 33천이 천국이요, 국조의 건국이념이 홍익인간 弘益人間 광명이세 光明以世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니, 이를 위하여 아침을 깨우고 부지런히 직분을 다하라는 뜻으로 서른세 번을 치게 하였고, 그 전통을 제야의 종이 이어받은 것이다.

제야의 종소리 들으며 / 속세의 인연을 정리 한다 // 생각해 보면 올 한 해 / 내게 눈물 주고 아픔 주었던 이름들은 / 이리저리 뒹굴다 바스러진 낙엽으로 / 내 망각의 휴지통 속으로 던져지고 // 번지르한 말 한마디 아니하여도 / 조용한 미소와 다정한 눈빛으로 / 내 지친 삶에 응원군이었던 이름들은 / 책갈피 속에 조용히 둔 꽃잎으로 / 내 추억의 명함첩 속으로 간직된다. // 그리하여 서른세 번째의 종소리를 / 마지막으로 / 올 한해를 마감하면 / 새해에는 좀 더 아름다운 인연으로 / 내 마음 속 명함첩 가득 채워지기를 / 기원하면서 // 편안한 잠으로 / 하루의 삶 / 한해의 생을 마무리해 본다.

이원배 시인의 ‘제야의 종’과 함께 한해를 미리 반추하며 새해의 계획을 세우면, 올해 제야의 종소리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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