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ain de Botton, MVRDV, and Glenn Murcutt

빈티지한 분위기가 유행이 되면서 멀쩡한 나무도 토치로 그을려 빈티지하게 보이게 해서 분위기를 만든다. 건축계에서는 이를 ‘부차적인 장식’이라는 이유로 비판하곤 한다. 그러나 어떤 지평에서 비판을 받아야하는지가 이번 글의 관건이다. 빈티지는 옛 것, 손때 묻은 것을 좋아하는 현상이고 같은 맥락에서 생활의 진실성이 넘치는 민가, 농촌, 헛간 건축이 되찾아지고 있다. 무언가 소탈하고 욕심없는 곳으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현세의 때가 없는 곳, 오직 먹고사는 일만 있는 곳 말이다. 최근의 삼시세끼와 같은 다큐와 예능이 접목된 것이 인기 있는 이유이다.

충분히 이해가 되며 필자도 편하다. 그러나 태클을 걸고 싶은 이유는 그런 물리적 상황을 만드는 정신적인 지형의 부재이기 때문이다. 그저 상실에 대한 아쉬움인 것이다. 건축담론의 역사에선 “건축사 없는 건축”과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 섣부른 건축사의 개입에 대한 비판으로 작용한 지 오래다. 건축사가 어쭙잖게 설계한 것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좋은 환경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수없이 한 게 안한 것만 못하다고 듣고 있고, 일례로 서울의 노들섬 개발에도 그냥 놔두자는 의견이 우세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기실 빈티지와 헛간건축의 키워드는 시간으로 증명된 익숙한 무관심이다. 버나드 루도프스키와 제인 제이콥스가 적절히 언어화하지 못한 개념은 문화적 지속성(Cultural Ecology)의 개념이다. 건축사 없는 건축은 한 문화권에서 익명적으로 집을 땅의 한켠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에 맞게 만드는 사람들의 익명적인 지혜를 암시하고,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의 도시의 한 지역의 구멍가게는 들락날락하는 동네 사람들이 도시에서 서로 눈인사하며 마주칠 수 있는 지속적인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죠셉 리쿼트는 “천국에서의 아담의 집”의 책에서 원시로부터 시작된 오두막과 그 주변의 인간의 행태와의 관계에 대해 의미를 밝히면서, 집 자체보다는 집을 둘러싼 사회적인 행위의 중요성에 대하여 밝혔다. 리쿼트는 인간의 행태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중요성을 부각하지만, 별 의미가 딱히 없는 농부의 헛간에서 볼 수 있는 일상성은 농부와 그의 가족 그리고 커뮤니티의 익명적 문화의 지속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헛간건축’이 뜨고 있다. 제주도의 미깡헛간도 새롭게 변모하며, 완주의 농협창고, 인천의 일제 강점기 창고도 예술단지로 변모하였다. 공공의 용도개발과는 달리 헛간이 주는 정신적인 가치를 재발견하는 움직임도 있다. “행복의 건축”으로 유명한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유명건축사가 설계한 도시의 작은 집과 교외의 헛간에서 하루를 지내는 ‘Living Architecture’란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주말과 휴일에 주로 전통적인 펜션같은 집을 빌리곤 하는데, 영국에서 쉽게 보지 못하는 유형의 건축으로 펜션을 만든 셈이다. 개발업의 입장이 아니라, 현대건축을 체험하게 한다는 명분이 있었던 것이다. (서펜타인 갤러리를 외국건축가가 설계하여 자국민에게 체험하게 한다는 명분과 같다.) 그중에 MVRDV의 Balancing Barn은 헛간 유형을 새로운 컨텍스트에 만든 예를 보여준다. 경사지에 놓인 30m 길이의 헛간형태의 집은 땅에 놓여있으며 또한 땅에서 떠있는 느낌을 동시에 준다. 개인의 집도 아니면서 아늑하고 낭만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 현대적인 헛간을 만든 셈이다. 새로워진 헛간의 유형은 건축의 전통과 현대디자인에 개념의 전이를 보여줄 수 있는 장치이다. 헛간에서의 생활을 새롭게 재정의하는 작업은 전통건축이 현대화될 수 있고, 현대건축이 전통스러울 수 있는 가능성을 주는 것이다.

▲ The Balancing Barn, Suffolk, England, MVRDV, 2010  ⓒ송하엽
▲ The Glass Farm,Schijndel market square, Netherland, MVRDV,2012 ⓒ송하엽

MVRDV는 위니 마스의 고향의 빈 공터가 된 중심공간에 농장같이 생긴 ‘Glass Farm’을 설계하였다. 위니 마스는 2차대전 폭격이후부터 텅 빈 이 공간을 동네의 아늑함을 만들지 못하는 곳이라 싫어했다한다.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마스는 예전에 있기를 바란 농장의 모습만을 재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대시대에 농장이 마을의 중심에 있는 것이 어색했던 지, 유령같은 모습이라 여기고 ‘고스트팜(Ghost Farm)’이라 여겼다. 이 건물은 헛간유형을 다 종합해서 비교한 이후에 그 공터에 걸맞은 크기로 재현한 것이다. 특이한 것은 유리면에 벽돌헛간의 사진을 프린트하고, 지붕면에 나무그늘을 프린트하여 시뮬레이션한 모습이다. 추억이 사진처럼 남듯이 사진의 조각조각이 헛간의 느낌을 재현하고 있다. 마을의 공터를 이용하여 사무실, 가게, 운동센터 등을 유치하는 것이 옳았는지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유리에 불투명한 헛간의 벽돌과 창문 입면을 프린트하는 데 적용되었다. 실내의 상업기능은 시각적으로 감추고, 오래된 마을의 중심에 있어야 할 법한 헛간을 햇빛에 따라 다양하게 보이는 모습으로 현대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폭격이후 60여 년간 비어있었던 마을의 중심에 빈티지 하지만 업데이트된 헛간을 놓은 것이다. 위니 마스는 마을의 중심에 진짜 헛간을 만든다는 생각은 틀린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농부는 그런 식으로 헛간을 만들지 않는다. 땅과 주변관계를 면밀히 보고 필요한 곳에 헛간을 설치하는 것이지, 중심에 빈 공간이 있다 해서 놓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유령 같은 헛간이라 한 것이다. 여기서 유령은 이중적 의미이다. 84개밖에 남지 않은 옛것을 상실한 헛간의 유령이며, ‘유리로 현대화된 유령’이란 뜻도 있다.

▲ Guest Studio, Kempsey, Australia, Glenn Murcutt, 1992 ⓒ송하엽

우리는 예전의 헛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가짜 빈티지도 아니라고 본다. 이 점을 제일 잘 보여주는 예가 호주의 글렌 머켓의 ‘Guest Studio’이다. 예전의 트랙터 창고를 변모시키며, 트랙터에서 떨어진 기름때도 바닥에 남아있고, 오래된 나무판벽은 사포질을 하며 잘 갈아져 있고(원래 헛간에서는 놔둠), 썩은 기둥부분은 새것으로 덧대서 이어져있고, 빗물은 모아서 머켓의 전매특허인 수직홈통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아주 무심한 듯한 헛간이지만 머켓은 이 집으로 움직임을 표현하려 했다한다. 땅에서 살짝 띄우고, 빗물을 모으는 지붕경사, 바람과 빛이 들어오는 창 등 환경과 건축요소의 움직임은 이 개량된 헛간이 주는 즐거움이다.

헛간건축은 익숙한 무관심의 지평이었으나, 관심의 대상이 되며, 또 상실의 느낌도 준다. 현재 개선이 되는 헛간은 원형의 상실감과 더불어 현대감을 주듯이 생활을 새롭게 규정을 하며 익숙한 무관심의 지평으로 숨어들어가 눈에 띄지 말지어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