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일간지의 한 칼럼을 통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 칼럼의 일부는 아래와 같다

이 글은 고인인 건축인 김수근의 윤리나 과오에 대한 문제제기 차원이 아니다. 그가 정작 ‘건축가’인가 아닌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그의 실체를 모른 채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계속 떠받드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태도에는 이제 제동을 걸어야 한다.

<중간생략>

김수근이야말로 반민주·반인권의 독재정권에 협력하면서 자신의 건축적 성과를 이룬 건축인이다. 대표적 건축인 88올림픽 주경기장,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을 만나 지은 워커힐호텔 힐탑바, 서울 남산 한국자유총연맹 자유센터와 타워호텔, 육사 교훈탑, 인천상륙작전기념관, 대법원, 치안본부 등 그의 대형 설계 건축물은 많다. 급기야 대규모 국가건설기획을 전담했던 개발독재정권의 ‘한국기술개발공사’ 대표이사도 했다.

결정적으로 그의 정체성을 드러낸 것이 서울 용산의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이다. 전두환 말기 경찰의 폭행과 물고문으로 죽임을 당한 서울대 학생 박종철 열사(당시 23살)의 사망 현장, 김근태 민주당 고문이 1985년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전기고문을 당한 숱한 민주인사들의 고문현장. 이 건물은 고문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구조로 돼 있다. 7층짜리 건물에서 고문실이 있는 5층만 유독 창문이 아주 작게 설계되어 있다. 끌려온 이들은 길고 어두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어긋나게 배열된 문들을 지나 철문으로 들어갔다. 공간 전체가 이미 인간의 의식과 의지가 무너져 내릴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폭력적인 건물구조 설계였다.

<중간생략>

그가 지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서울 남산 ‘자유센터’의 도로변 긴 석축의 석재는 조선시대 도성인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의 성벽을 뜯어다가 사용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조 5년(1396) 1차 도성 축조 당시 경상도민이 축조한 구간인데, 자유센터 축대에 사용된 석재 중에 ‘경주시’(慶州始)와 ‘강자 육백척’(崗字 六百尺)의 각자(刻字)가 있어 이를 증명한다. ‘건축가’ 이전에 지식인으로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상수 작가.연출가 <2011년 11월4일 한겨레신문>

출근 전 화장실에서 읽었던 이 짧은 칼럼의 인상은 너무도 강렬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건축사중 최고로 존망 받는 김수근에 대한 위와 같은 평가를 우리 건축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무척이나 궁금하였다. 건축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또한 그 시대는 다양한 각도에 따라 평가되어지고 역사에 남는다. 하기에 하나의 관점으로만 한 시대와 역사를 평가 하는 건 무척이나 위험하다.

또한 이러한 논의는 흑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양지와 음지를 동시에 보아야만 객관적 평가가 이루어지고 그로인하여 교훈을 얻는데 의의가 있다. 그래야 세상은 좀더 살기 좋고 상식적인 세상이 된다.

우리는 한사람의 건축사와 그의 건축물을 평가하기 위해선 건축물에 대한 조형성 예술성, 기능성, 그리고 시대성 과 역사성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정체성을 통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만큼 건축은 복잡하고 어렵다. 위의 칼럼에서는 김수근이 군부독재 시대에 그들을 통해서 일을 만들거나 받아서 그들의 정권을 유지하고 홍보하는 크고 작은 건축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남영동 대공분실에선 인간자체를 무너뜨릴 의도의 건축물이 과연 올바른가를 묻는다.

결국 한 건축물이 지어지게 되는 과정과 의도를 함께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빠진 건축물의 물리적인 평가만으론 제대로 된 평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껏 우리 사회가 알고 있던 김수근에 대한 평가는 재평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굉장히 도발적이고 과격한 내용이다. 더구나 건축계 밖의 인물이 이러니 왠지 기분이 더 상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칼럼을 쓰레기로 치부하며 감정적으로만 대응하자니 왠지 찜찜하다. 매우 불편하지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동안 우리는 김수근뿐 아니라 많은 건축사들의 삶과 그들의 건축을 바라볼 때 우리가 보고 싶은 방향으로만 보아 온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들만의 자기만족이 동시대를 살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의 정서나 삶과 괴리된 건축계를 만들어 지금의 어려움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도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건축사는 건축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한사람의 지식인으로써의 올바른 역할이 무엇인지도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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