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터를 잡을 때의 축은 좌와 향을 우선하지만, 집을 앉힐 때는 방위를 중시한다. 좌는 집을 앞에서 봤을 때 뒷산과의 관계이고 향은 집안에서 전면을 봤을 때나 혹은 대문을 나설 때, 전망을 따지는 것이며 방위는 단순히 앉혀진 집과 해와의 관계이다. 우리나라는 위도가 북위 30도에서 40도 내외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로 해가 집 뒤에서 뜨는 경우는 없으며 집 뒤에는 1년 내내 햇볕이 들지 않는 절대 음영이 생긴다. 따라서 집은 터 뒤로 붙여 배치하고 앞에 마당을 둔다. 그러나 적도 가까이 있는 인도의 건축은 위도가 낮기 때문에, 여름에는 해가 집 뒤에서 뜨고 지므로 주된 건물을 터의 중앙에 배치하고 부속건물들이 주변으로 배치된다. 우리나라의 사찰도 처음에는 인도식으로 마당 가운데 탑을 세우고 주변에 부대건물을 배치했지만, 집 뒤에 절대 음영이 생기는 우리나라 특성상 오히려 마당을 비워두고,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을 ‘ㅁ자’로 둘러 배치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우리나라 산세는 주로 서쪽으로 기우러져 있기 때문에 집의 좌향이 서향인 집이 많다. 따라서 안채는 지세에 맞춰 서향으로 앉히되, 사랑채만은 남향을 해서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고려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경주 양동의 향단이다. 향단의 경우 사랑채가 남향하고 있음으로 사랑마당을 넓게 만들고, 대신 가운데 안마당을 조그맣게 마련하여 안방은 남향을 향하지만 안대청은 서향을 할 수 있게 계획했다. 특이하게 ‘ㅗ자형’ 안채 앞뒤로는 서향하는 행랑채를 덧 붙여서 집이 산세에 맞춰 서향하면서도 햇볕을 받을 수 있도록 남향하고 있는 특이한 평면 형식을 택하고 있다.

▲ 양동 향단 전경(한국학중앙연구원)
▲ 양동 향단 배치도(민족문화대백과)

나주 도래의 홍기응 가옥도 그렇다. 안채는 지세에 따라 서향으로 앉아 있지만, 사랑채만은 별당처럼 별도로 담장을 하고 남향하여 배치되었다. 홍기응 가옥은 대문도 서향하고 있지만 향단은 사랑채에 맞춰 남향하고 있어서 이채로운데, 이것은 대문간이 후대에 고쳐지은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초창 때와 적용한 양택론(계획론-전통적 간잡이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 나주 도래 홍기응 가옥 사랑채(문화재청)

반대로 강릉 선교장의 경우, 안채가 나즈막한 뒷산을 끼고 있기 때문에 여타의 집처럼 사랑채를 앞쪽에 놓지 않고 옆으로 나란히 배치한다. 중국에서는 별로 쓰지 않는 방식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자주 쓰이는 방식이다. 특히 18세기 이후 주기론자(상업주의)가 득세하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주기론자들은 바람(氣)이 통하기도 하고 안채와 사랑채의 상호 기밀성을 위해서도 서로 떨어져 배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ㅁ자 안채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안사랑을 꺾어 가면서 2채를 옆으로 놓고 별당채를 별도로 큰 마당을 앞에 두고 넓게 배치되는 특이한 형식이다. 이것은 19세기 이후 낭만주의를 반영한 작품이다.

▲ 강릉 선교장 배치도(열화당, 한국의 민가1강릉 선교장, 1971)
▲ 강릉 선교장 사랑채(www.knsgj.net)

해남 윤고산 고택인 녹우당을 보면 안채, 사랑채, 문간채가 일직선 종축상에 석三자로 배치되어 있다.<그림3, 사진5> 뒷산의 산세가 길게 뻗어 내려오기 때문인데 이런 집이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드믄 편이다. 여기서 왜 대문간이 집 앞으로 나서지 않고 측면으로 나고 고샅 안에 가려져 있는가는 다음에 설명하기로 한다.

▲ 해남 윤씨 녹우당 배치도(문화재청, 해남 윤두서가옥 기록화보고서)
▲ 녹우당 사랑채 전경(문화재청)<사진4> 강릉 선교장 사랑채(www.knsgj.net)

이것들은 모두 사랑채 앞에도 사랑마당을 두는 양반집[動宅]인 경우이고 사랑마당을 따로 둘 수 없는 서민들의 집[靜宅]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을 보인다.(정택이니 동택이니 하는 것은 양택론(陽宅論)에서 말하는 이론이므로, 다음에 논하기로 한다) 북제주의 집인 경우, 안거리는 지세를 따라 북향하여 배치되지만 밖거리는 마당을 마주하고 남향하여 두[二]자 배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안거리 뒤에는 안튀(뒤란)란 공간을 만들지만 나무를 둘레로만 심어서 볕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고려한다. 반대로 남제주의 경우는, 지세에 맞춰 안거리가 남향을 하게 되면 밖거리는 동향이나 서향을 할 수 있도록 마당을 중심으로 ㄱ자로 배치한다. 사랑채 앞에 별도의 사랑마당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북제주군 문시행가옥 (두이자 배치)

말하자면, 안채는 지세에 따라 좌를 잡고 사랑채나 대문간은 향을 맞춰 틀어 앉히며, 마지막으로 여타 사랑채 건물은 햇볕이 잘 들 수 있도록 남향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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