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내진설계의 적합성 여부에 대한 국정감사로 소규모 건축물을 주로 설계하는 전국 대다수의 건축사에게 저층건축물용 구조계산프로그램의 필요성이 자연스레 대두되었다. 협회에서는 때맞추어 이미 지난해에 전문 관련업체에 의뢰한 저층건축물용 구조계산프로그램이 거의 마무리되어 시연단계에 있고 최종 보급가격협상을 하고 있다며 협회가 프로그램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협회의 역할과 대응은 여기까지가 전부였고 한계였다. 어려운 사무소 형편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구입하고자 했던 프로그램은 전국 16개 시도건축사회 순회 프로그램 설명회를 목전에 둔 5월말 난데없이 사전구매할인판매라는 개발사의 일방적인 고가의 책정가격으로 회원 개개인 마다팩스와 문자메시지로 전해졌다. 한마디로 가격협상은 전혀 이루어지지도 않은 채 터트린 협회에 대한 개발사의 카운터펀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협의되지 않은 가격과 조건으로 사전판매를 한다는 개발사에 대해 협회에서 이상하리만큼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되짚어보지만 5월말 개발사의 일방적인 사전판매 홍보가 있자마자 협회가 즉시 항의하고 동시에 전국 회원에게 협회와의 협상가격이 아니니 협상이 될 때까지 일절 구매하지마라고 하는 그 흔한 문자메시지 한통만이라도 보냈더라면 지금하고는 형국이 딴판이 되었을 것이다.

협회의 대응은 개발사의 사전판매가 동시에 이루어진 순회설명회가 한참 지난 6월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프로그램에 문제가 없는지 검증을 하고 개발사 책정가(500만원) 이하로 공동구매 예정이니 금액 확정시까지 개별구입을 하지마라는 내용의 공문으로 회원 개개인도 아닌 시도건축사회로 전해졌다. 때는 이미 전국 순회설명회를 통해 상당수의 회원이 사전구매계약을 마친 뒤여서 협회의 협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뒤늦게나마 천여 명의 공동구매희망 회원 파악과 프로그램의 검증 등을 들어 개발사와 협상에 호기있게 나서겠다던 협회는 이마저도 무슨 시간이 그리 촉박했는지 8월말 이해할 수 없는 협의결과로 회원에게 전해졌다. 챙겨보겠다던 프로그램의 검증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개발사의 당초 책정가격, 조건과 별반 다름없는 내용으로 협회의 완패이자 개발사의 일방적인 승리나 다름없는 협의결과였다.

오로지 수요자는 건축사 회원뿐이기에 협상에서 우의에 있을 수밖에 없는, 누가 봐도 칼자루를 쥔 협회가 개발사에게 회원정보만 제공하고 제품 개발과 홍보에 이용만 당한 협의결과에, 회원들은 일방적 책정가격과 조건으로 판매한 프로그램 개발사에 대한 탓에 앞서 협회의 무능함과 무책임에 실망을 넘어 분노에 이를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협회는 시간을 지체할 경우 프로그램구입을 희망하는 회원들이 선의의 피해를 볼 수 있어 미흡하나 유리한 조건으로 협의를 완료했다 하니 회원의 심경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소통의 부재를 절실히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협회는 회원의 구입부담을 전혀 줄이지도 못한 채, 독점적 품목으로서 한번 사용하면 종속적으로 사용해야만 하는 특성의 소프트웨어 개발사에게 유지보수 명목으로 사용자의 지갑을 언제든 열 수 있는 길을 너무 쉽게 내주었다. 이제 협회의 대응 실기(失期)와 미숙함 때문에 회원들은 프로그램의 저렴한 구입 여부를 떠나 회원으로서 자괴(自壞)감과 협회 존재의 이유마저 의심하도록 이르게 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다.

지금도 협회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재협상을 요구하는 회원의 글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제라도 협회는 협의결과대로 살테면 사고 말테면 마라식의 남 일처럼 굴기 보다는 프로그램 검증결과 등에 대해 회원에게 먼저 소상히 알리고, 천여 명의 든든한 구매희망회원의 힘을 업어 졸속 협의한 협의결과를 원점으로 돌려 회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협회 본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회원들이 협회를 든든한 울타리로 여기고 협회를 믿고 따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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