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츄미와 BMW Guggenheim Lab

▲ 폴리, 버나드 츄미, 1989. 폴리의 앞에 있는 의자는 빙글빙글 돌아가게 되어 폴리와 공원의 모습을 다면적으로 볼 수 있다.

버나드 츄미는 시대를 풍미한 건축사로서 1990년대부터 현대건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라빌레트 공원계획안(1982)은 ‘Architecture=Space×Event×Movement’라는 공식을 낳을 정도로 건축사들에게는 건축, 조경, 도시를 아우르는 표본이 되는 작품이다. 들어가지 못하는 집, 폴리를 현대화하며 갖가지 추측과 해석으로 인구에 회자되게 하였으며, 해체주의의 승리를 확인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츄미에게는 몇 가지의 참조가 되는 관심목록(Inventory)이 있다. 러시아 구성주의의 어휘들, 프랑스 상황주의자의 도시접근,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폴리가 있다. 폴리는 들어갈 수 없는 집인가? 정원에 있는 장식품인가?

▲ Cube de Eiffel, 중앙대학교, 서울지역대학 건축과연합전시회 2013년 대상작, 홍익대 걷고싶은 길에 패션의 개념을 따라 옷걸이로 만든 파빌리온.

언제부터인가, 정원에는 파빌리온이라는 오두막 같은 것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원래 파빌리온은 신전의 모습과 닮은꼴로 정원에 지어졌으며, 주로 정원, 물, 자연이 어우러진 천국과 같은 곳에 놓여 있는 독립적 구조로 그려져 있다. 외기와 면하여 천국을 즐기는 곳으로 묘사되어져 있다. 파빌리온은 여유, 환대, 이상향을 위한 독립적 장치였다. 아시아 유목민의 집으로 쓰이던 텐트는 페르시아의 아케메니드(Achaemenid, 550–330 BC) 왕조에 의해 큰 텐트로 발전하였고 그들은 그것을 ‘천국(heaven)’이라 불렀다.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를 정복했을 때 그 텐트에 하늘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그들은 서로 왕조를 유지하며 캐노피를 통해 화합의 의미를 상징화했다. 그 캐노피는 기독교 공인 후 닫집 (baldachin)으로 발전하였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게 되었지만, 예수와 현세를 잇는 첫 번째 제자 베드로의 집, 성 베드로 성당 안에는 살아있는 베드로라 할 수 있는 교황의 의자가 있고, 그 의자와 제단을 덮어 주는 것이 바로 닫집이다. 닫집은 그 큰 공간에서 구심점을 잡아주며, 종교적인 상징으로 스스로를 장식한다.

이렇듯 집과 궁전이상으로 파빌리온의 형태는 ‘화합’이라는 코드를 상징하였다. 현대적으로 보았을 때 ‘집안의 집’과 같은 이미지는 이외에도 다른 용도로 쓰인듯하다. 집의 모습은 가구나 함에서도 보인다. 왕과 교황이 쓰던 천국의 이미지는 세속화되면서 부자들의 정원과 집에도 놓이게 되며, 침상에까지도 그 모티브가 남발되었다. 누구나 다 왕이 되고 싶지 않았을까? 비교적 근대적 개념인 폴리는 이 시점에서 등장한 듯하다. 비합리적이고 낭만적이며 때로는 신비적일 수 있는 이 구조체는 (16thC-17thC), 귀족들의 정원에 지어지곤 하였다. 정원의 파빌리온이 잠깐 와서 그 안에서 쉴 수 있는 용도였다면, 폴리는 수도원의 폐허 같은 모습으로 정원의 배경이 되는 장식적인 역할을 하곤 했다. 사실 용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 애매함 때문에 용도를 알 수 없게 된 것도 많으며, 사냥용 타워, 가제보 등등 정원에서의 활동을 위한 용도도 있었다.

정원에서의 폐허가 주는 이미지 이상의 신비주의는 18세기에 있었다. 영국에서는 장식의 은자(Ornamental Hermit)라 하여 대저택의 정원의 폴리에 은둔자를 고용하여 살게 하는 관습이 있었다. 은둔자는 대저택의 주인들에게 보통 7년 계약으로 고용되어 그의 정원에 살며 머리도 자르지 않고, 마치 숲의 정령처럼 살며 정원에 방문한 사람으로 하여금 신비감을 주어야 하는 것이 일이었다. 그 대가로 당시로서는 거금인 600파운드까지 받기도 했으며, 중간에 신비감을 잃는 행위, 즉 마을에 가서 술을 마시거나 일상생활 등을 하게 되면 계약이 파기되는 조건이 있었다. 당시 정원의 주인들은 폴리, 가제보, 동굴 등에서 신비감을 더하는 행위를 즐겼으며 사색까지도 멋있게 하곤 했다.

▲ Atelier Bow-Wow, Traveling Toolbox, BMW Guggenheim Lab, Berlin, 2012
▲ Atelier Bow-Wow & SDM Architects, Traveling Toolbox, BMW Guggenheim Lab, Mumbai, 2013. 29일 동안 디자인, 조사, 여행, 토크, 워크샵, 영화상영 등 165개의 공공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1970년대에 츄미는 맨하탄에서 스튜디오를 가르치며 폴리를 만들어 보는 기회를 가졌다. 그는 작은 설치작업들을 “20세기의 폴리”(1976)라 명명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그는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점점 통제되어 가는 도시에 예술적이며 공공적인 의견을 더하는 도구를 만들 때, 작은 설치작업은 효과적이었다. 건축적 사물, 사람들의 반응 그리고 사용의 불일치성에 관심 있던 츄미는 건축을 정신적 지형을 만드는 소통수단으로 여겼다. 라빌레트에서의 정신적 지형은 통제된 삶에 의문을 던지는 현대인의 삶을 표방하며, 그 순간이 포착된 빙글빙글 도는 의자에 앉아 폴리를 감상하는 현대인의 불일치적인 모습을 츄미는 즐겼다. 영화의 장면들처럼 시공간의 한 켠을 장식하는 폴리일 뿐, 정신적 지형의 실체는 공공적 의견으로 형성되기에는 부족하였다.

시대를 지나 그간의 다양한 폴리의 시도들 중에 2011년부터 시작된 BMW Guggenheim Lab의 Traveling Toolbox의 뉴욕, 베를린, 뭄바이에서의 아틀리에 바우와우와의 시도는 도시에서의 정신적 지형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사진4~7> 영국의 서펜타인 갤러리가 영국시민에게 외국인 유명건축가의 작품을 보여주는 목적이상으로 파빌리온의 공간적 성격에 크게 변화를 주지 않는 반면, 아틀리에 바우와우는 도시의 공간을 점유하는 최소한의 지붕과 같은 틀 아래에서 다양한 공적인 행위, 예를 들어 강의, 토론, 워크샵 등이 일어나도록 프로그램에 접근한다. BMW Guggenheim Lab의 시도도 ‘편리를 저항하는 것(Confronting Comfort)’으로 돈을 벌어 편리한 생활을 하려는 현대인의 심리를 꼬집은 것이다. 스마트폰을 쥐고 모두 다 예약하며 스포츠카로 움직이는 손쉬운 도시가 아닌, 모두를 위한 불편을 감내할 수 있는 정신적 지형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명품기업과 명품미술관이 줄 수 있는 레거시의 정반대를 주장하는 것이다. 일본 건축가들이 잘 풀어내는 건축의 사회적 역할도 한 몫하고 있다. 아틀리에 바우와우의 가벼운 지붕구조와 텅 빈 바닥은 마치 알렉산더대왕이 페르시아에서 본 텐트의 재현 같을 정도로 그 아래에서의 모임들은 격조 있는 공공성을 가지게 된다. 페르시아의 텐트아래엔 하늘의 모습이 그려있었지만, 툴박스의 지붕아래엔 각종기구를 달 수 있는 트랙과 디스플레이가 정보를 준다. 폴리의 정신적 지형은 먹고 사는 것을 떠나 무언가를 지향하는 인간의 지평을 비정한 도시에 내세운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