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택(陽宅)론에서, 전통적 계획가(地師)들은 집터를 잡을 때 우선 형국을 살피고 다음에 방위와 좌위, 마지막으로 향위를 살핀다. 方(방), 坐(좌), 向位(향위)에 대해서는 각기 다음 장에서 말하기로 하고, 오늘은 알듯 모를 듯한 “局(국)이란 무엇인가?”를 곱씹어 보기로 하자. 풍수지리에서 국이란 穴(혈)과(사)를 말한다. (더 어려워진다) 혈이란 아는 바와 같이 산세(맥)가 흘러가는 경혈 자리, 곧 명당이고 ‘砂(사)’란 주변의 형세, 곧 지세를 보는 것이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국이란 局量(국량)과 국면을 분석하는 것인데 이것을 풍수지리에서는 ‘형국’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풍수지리란 무엇을 말함인가? 통상 다 아는 듯한데 정확히 집어내지는 못한다. 풍수지리설이란 병법에서 출발한 이론으로서 풍수는 하늘의 운행, 곧 기후를 말하는 것이고 지리란 주변의 지세를 살피는 것이다. 풍수는 언제 장마가 들고 태풍이 오며, 눈이 내리고 땅이 녹을 것인가를 짐작하는 것이고 “지리는 병사를 어느 곳에 진을 치면 안온하고 방어하기 편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병사가 산을 등지고 왼쪽에 개울을, 오른쪽에 둔덕을 두며 동향하고 있으면 싸우기 편하다는 것이다. 예전에 칼로 싸움을 할 적에 방패를 왼쪽으로 치켜들기 때문에 왼쪽에서 적이 접근하면 싸우기 편하고, 또한 칼싸움은 보통 아침에 시작하면 저녁에 끝나므로, 해질녘에 지는 해를 등 뒤에 두면 싸우기 편하다는 내용에서 출발한다.

집터를 잡는데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우선 땅의 국량을 따져 보는 것이다. 집을 한 채만 앉힐 것인가? 아니면 100호가 되는 집터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천호가 넘는 도시의 터를 잡을 것인가? 집의 크기 혹은 마을의 크기에 따라서 국의 크기를 결정한다. 천호가 넘는 도시는 들판에 자리 잡아야 하는데 이런 도시는 풍수지리를 따지지 않고 양택론에서 말하는 방위만을 본다. 그렇지만 그 지세가 갖는 국면, 곧 형세를 보고 판단하는데 이것을 형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큰 마을은 대개 강가에 자리하는데, 물살이 천천히 흐르기 위해서는 강이 휘돌아 가는 곳이 좋으므로 배 형국이 가장 많다. 배 형국은 높은 곳이 뱃머리(이물)이고 낮은 곳은 고물이므로, 낮아서 자주 물이 들어온다. 배 형국은 가운데로 큰길이 놓이고 먼 동산 말뚝에 줄을 연결시켜 둔다. 풍수해가 들었을 때 피신할 수 있는 길이다. 자연스럽게 높은 사람은 이물 쪽에 살고 고물 쪽에는 하층민이 산다.

대표적인 경우가 안동 하회마을이다. 풍산 유씨가 살기 이전에 최씨들이 살았는데 마을의 배치 계획을 배형국에 따라 했다. 마을 한 복판으로 큰길을 내고 여기에 열십자로 길을 내서 羊(양)자처럼 계획을 했다. 양의 머리 쪽에 큰 집들이 자리했는데, 어느 해는 풍수가 들어 망하고 이들은 마을을 떠났다. 다음에 마을에 들어온 풍산 유씨는 마을을 연화유수형으로 바꿨다. 복판에 주요 건물을 배치하고 마을안길을 방사선으로 놓는 것이다. 마을 중앙이라야 별로 높지 않음으로 강에 떠다니는 연꽃처럼 항상 위태, 위태하지만 500년 이상을 지켜온 유서 깊은 마을이 되었다. 국면인 형국을 달리 파악함으로서 전혀 다른 마을 배치계획이 되었다. 즉 형국이란 주변의 지세를 실존하는 물건에 상정하고 이것의 생태에 맞춰 배치계획을 짜는 것이다. 서양의 도시계획이 지극히 도식적 기하학에 의존한다고 하면, 우리는 格物致知(격물치지)라고 그 지세와 유사한 물건의 생태에 맞게 계획한다고 볼 수 있겠다.

▲ 안동 하회마을 배치도(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 한국 전통주거의 계획개념을 응용한 공간구성기법에 관한 연구, 2002)

그렇다고 우리나라에 기하학적 배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禮制(예제)’라고 우리나라 도시계획의 기본은 기하학적이다. 기본적으로 길은 우자 모양 -동문과 서문의 길을 가로로 놓고 남쪽으로 대문으로 연결하며- 으로 만들고 머리에 주요 건물을 두는 방식인데, 이들의 계획 방법을 道家(도가)식이라고 하고 전자의 방식을 術家(술가)식이라고 한다. 유학자 선비들은 도가식으로 예제를 주장하여 모든 도시계획의 기본은 기하학적이지만, 민중들은 현실적으로 지세에 맞추어서 술가식에 따랐다. 대표적인 경우가 화성성역이다. 대표적 고전주의자인 다산은 예제에 따라 동서문에 해당하는 남북의 문(수원은 전체적으로 동향을 하고 있다)을 2,000보에 맞추고 종로를 그은 다음, 그 중심에는 종루를 두고 있다. 마을의 배치는 井田(정전)법을 기본으로 하는 방리제에 따라 계획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읽을 수 있지만 중국처럼 완전히 기하학적이지는 않다. 우리나라 지세는 도가의 방법보다는 술가의 방법에 어울리게 기복이 많다.

▲ 수원의 도시가로 모습
▲ 팔달문 성내측 입면도

윤선도가 계획했다는 보길도의 부용동은 전형적이 분지(굼)형 마을로서 연화(부용)형국이다. 형국에 맞추어서 마을 복판에 연못을 파고 길을 방사선으로 계획했다. 그런데 도가인 윤선도(남인)는 술가식 이런 마을 배치가 맘에 들지 않았다. 분지(굼)인데도 불구하고 서향해서 (대구의 묘동처럼) 우자형 길을 새롭게 개설하고 자기 집은 우자 머리에 계획한다. 지금은 없어진 집을 다시 만들었지만, 이렇게 지어진 집은 너무 습기가 차서 불과 200년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이 형국을 보는 것도 술가와 도가는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순천의 낙안읍성은 2개의 형국으로 해석한다. 좁게는 성곽을 중심으로 하는 배형국이고 크게는 낙안 들판 전체를 보고 ‘옥녀산발형’이라고 한다. 옥녀산발형이란 장군이 출정을 하는데 그 부인이 마지막으로 머리를 풀어 헤치고 단장을 하면서 장군을 기다리는 모습이란다. 여기에는 옥녀봉이 있고 장군봉, 투구봉, 등이 있으며 옥녀에게 가장 중요한 머리빗(안산인 옥산, 성 동문 바깥)과 그 옆의 면경(평촌 못)이 갖춰져 있다. 이것을 풀어 보면 전쟁이 났을 때 노약자들은 옥녀봉 뒤로 피난시키고 장군은 지휘부를 투구봉에 놓으며, 주군은 장군봉에 배치한다. 또한 비록 성 밖에 있지만 머리빗과 면경을 주의해서 관찰병을 파견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우리나라에 이 같은 풍수지리적 지세 해석은 도처에 많이 남아 있다.

▲ 낙안마을 배치도(규장각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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