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정산성 성벽따라 진달래가 만발했다. ⓒ최진연 기자

부산의 진산 금정산(800m)은 동래온천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이곳에 오르면 부산과 김해를 긋는 낙동강의 도도한 물결과 김해평야의 파노라마 능선도 감상할 수 있다. 맑은 날 에는 인근의 섬들과 멀리 거제도까지 한눈에 조망된다.

금정산에는 동래읍성과 함께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산성이 쌓여 있다. 성벽은 금정산 고담봉에서 서남쪽 계곡을 타고 넘으며 장장 18,8km를 이었다. 높이는 지형에 따라 다르지만 약 1.5~3m로서 포곡식 산성으로 국내서 규모가 가장 크다. 동서남북에 성문과 수구문·암문·장대·망대 등도 설치돼 있다.

금정산성을 처음 쌓은 세력은 누구일까…? 문헌기록은 없지만 부산이 일본과 인접해 있어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신라가 축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성문의 일부 기단석은 신라산성에서 나타나는 축성법과 유사하다.

▲ 가야시대 유물이 발견된 금성산성 남문 ⓒ최진연 기자

지금의 산성은 조선 숙종 29년(1703)경상감사 조태동이 축성허가를 받고 동래부사 박태환이 쌓았다. 숙종 때부터 쌓기 시작한 산성은 순조 때 완성됐다고 하니 긴 세월동안 산성은 보수와 개축이 있어왔다. 이 기록은 순조 8년(1808)금정산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면서 산성을 쌓을 때부터 보수공사 내역을 비석에 새겨놓았는데, 그 비석이 ‘금정산성부설비’다. 비문은 현재 금정초등학교 부근 주택가에 있다.산성을 지키는 일은 동래부사가 맡았으며, 평상시에는 산성 내 국청사와 범어사 승려 300명이 성을 지켰다. 유사시에는 동래·양산·기장 3읍의 병사와 승려들이 소집돼 방어하도록 했다. 하지만 금정산성에서는 전투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서문과 남문을 연결하는 성벽과 관아건물 등이 철거되고 산성에 보관 중이던 무기마저 몰수당하고 말았다.
멸실된 성문은 1972~1989년까지 복원됐고, 붕괴된 4개의 망루와 성벽도 다시 세워져 당시 위용을 되찾았다. 그리고 금정산성의 성문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저마다 특정이 있다.

▲ 범어사에서 오르는 길에 북문이 있다. ⓒ최진연 기자

아치형의 동문
금정산성은 면적이 넓은 만큼 산성을 찾아가는 길도 여러 코스다. 동문은 해발 400m에 위치해 있는데, 가장 쉽고 편리한 길은 동래온천을 거쳐 오르는 길이다. 동문은 옛날 동래읍성 쪽에서도 접근하기 쉬워 금정산성의 4대문 가운데 정문처럼 이용됐다. 성문에 오르면 사통팔방 조망권이 뛰어나 망루로도 손색이 없다.

순조7년(1807년)가을에 공사를 시작해 149일 만에 4대문을 완성했는데 기둥과 들보를 백리 밖에서 운반하고 험준한 벼랑을 깎아낼 때 메고 끄는 사람이 구름처럼 많이 모여들어 만(萬)사람이 힘을 보태 완성했다는 내용이 ‘금성산성부설비’에 기록돼 있다.

특히 동문과 여장은 동래읍민이 맡았고, 나머지 서, 남, 북문은 경상감영의 71개 주에서 차출한 백성들의 노동으로 완성됐다. 지금의 동문은 200전의 그 모습이 아니다. 일제의 만행으로 멸실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계곡에 세운 서문
금정산성 4대문 중 계곡에 세운 유일한 문이 서문이다. 낙동강에서 대천을 따라가다 보면 산성마을입구에 위치해 있다. 서문은 동문보다 규모는 작지만 훨씬 견고하고 아름답다. 서문의 누각과 ㄷ자 형태의 성벽 모습은 사뭇 예술적이다. 또한 서문 옆에 흐르는 대천에는 세 개의 아치형 수문도 만들었다. 이 수문위로 성벽이 이어졌다.

소박한 모습의 남문
서문에서 대천 상류를 끝까지 따라 오르면 남문에 닿게 된다. 남문은 동제봉과 상계봉을 잇는 능선상의 잘록한 고개를 지키고 있다. 이 성문은 단순하고 소박해 아무런 특징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문이나 서문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신라시대의 축조기법이 깃들어 있다.

남문 주변에서는 가야시대 유물이 발견돼 옛날부터 이용되던 유서 깊은 곳이다. 또한 산성고개에서 도로가 이어져 있으며, 금정산 유일의 케이블카 종점과 600m 남짓한 거리여서 자동차나 케이블카를 타고 찾는 사람들이 많다.

투박한 북문
북문은 범어사에서 2.5㎞ 정도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만나는데, 금정산성의 4대문 가운데 크기가 가장 작고 투박하다. 성문에는 아치형의 장식도 없고, 직사각형의 돌문에 누각과 성벽을 형식적으로 세운 듯한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거친 모습이 오히려 금정산성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북문은 주봉인 고당봉에서 가깝다. 고당봉에서 북문을 내려다보는 성벽 모습은 장관이다.

▲ 복원한 금정산성 전경 ⓒ최진연 기자

부산의 금성산성은 봄날 성벽 틈으로 보이는 진달래와 늦은 가을 소슬바람에 서걱이는 억새풀은 독특한 서정을 불러일으킨다. 가보지 않은 길은 언제나 궁금증과 아쉬움을 남긴다. 금성산성이 그런 곳이다. 하루에 다 알려면 욕심이다. 품새가 넓어서 몇 번은 답사해야 겨우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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