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건축사
박준 건축사

한국전쟁 후, 한국건축의 중요한 테마는 개발만능시대의 도시건축이었다. 늘어나는 인구와 팽창하는 도시를 감당하기에는 한옥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건축으로는 감당이 어려웠고, 벽돌과 콘크리트를 이용한 새로운 건축이 필요했다. 과거의 건축들은 낡음의 상징이었고, 새롭게 지어지는 건축물의 위용은 발전과 진보의 상징이었다. 도시건축에서 신축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과거의 건축물을 부수고 다시 만드는 과정은 구형 가전제품을 버리고 신형 가전제품을 사는 것만큼 쉬운 행위였다. 집장사로 불리는 건설업자들이 득세했고, 거기에 맞춰 건축시장이 형성되어 갔다. 공간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시대인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건축문화의 가치를 가진 건축물들도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져갔다. 제주대학교 본관과 같은 한국건축의 중요한 발자취들도 역사 속으로 퇴장하고, 근대건축의 중요한 유산뿐 아니라 비교적 근래에 지어진 가치 있는 건축물들도 개발논리 앞에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와 이러한 방향이 조금은 바뀌는 듯한 기조가 형성되고 있다. 옛 서울시청사가 서울도서관으로 바뀐 것처럼 공공주도의 리모델링이 아닌, 민간 자본이 투입된다는 점이다. 옛 공장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강릉의 테라로사나 방직공장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강화도의 조양방직, 화학공장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성수연방 모두 민간개발을 통해 만들어진 장소이다. 낡은 창고나 공장 등 기존의 버려진 공간들을 새롭게 바꾸려는 시도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개발시대의 자본 논리와는 다른 형태로 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공공개발과 같은 형태로 봐야 할 것인가.

필자는 건축을 바라보는 민간개발의 본질이 바뀐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투자 대비 이득이라는 기본 논리가 무너진다면 애초에 민간개발이라는 명제가 성립되지 않는다. 보는 방향이 다양해졌다고 하는 것이 그나마 타당한 이유가 될 것 같다. (이 시점에서도 다른 곳에서는 근대 건축들이 계속 사라지고 있다.)

일부 공간에서는 신축의 장점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더욱 강화된 건축법과 각종 규제들은 과거의 건물보다 더 많은 면적 혹은 공간의 사용을 어렵게 한다. 부수고 새롭게 짓는다 하더라고 큰 이득을 보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건축물을 리모델링하고 일부를 증축하거나 재사용하는 것이 훨씬 민간개발에 이득일 수 있다.

또한 공간을 체험하려는 문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새로운 장소를 체험하며, 그곳의 기록을 남기고 자신을 표현하려는 대중문화 속에 공간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떠오른 것이다. 제주 핫플레이스, 서울 핫플레이스 등의 인터넷 속 용어들은 이러한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 건축문화에서 어느 지점을 바라봐야 할 것인가. 공간을 브랜딩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공간 디자이너와 브랜딩 전문가는 있지만, 안타깝게도 건축사의 이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변화된 건축환경에 맞춰 변화된 건축사들의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신축과 달라진 시장은 건축사에게 좀 더 쉬운 접근을 요구할 수도 있다. 면적에 맞춰 최대한 많은 공간을 뽑아내야 하는 임대건물과는 다른 공간 본질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면, 건축사들만큼 많은 훈련을 받은 전문가도 없을 것이다. 공간구조를 재설계해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들. 우후죽순 생겨나는 많은 공간 브랜딩 기업들 중에서 건축사들이 만들어내는 기업 또한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신축에 비해 적어진 예산은 건축사들의 접근을 더욱 쉽게 할 것이고, 공간을 다루는 건축사들의 전문성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새롭게 접근해오는 시대에 맞춰 건축사들의 새로운 변신이 요구된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