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상주감리 대상이 되는 신축 건물의 건축주가 찾아와서 감리비에 대한 상담을 했다. 그의 요지는 약 60%정도 할인이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듣자마자 일언지하에 거절 했다.그러자 섭섭해 하면서, 그냥 와서 봐주는데 왜 그렇게 비싸냐는 것이다. 워낙에 알던 이라 조목조목 설명하고 돌려 보냈다. 한 두 어달 뒤에 다시 그로부터 연락이 와서 만나보니, 정말 60%가 할인된 금액으로 상주감리 계약을 맺은 것이다. 그의 말에는 많은 섭섭함과 우리 회사에 대한 불신이 섞여 있었다. 그 불신은 폭리에 대한 의미였다. 과다한 견적이라는 것. 하지만, 그가 우리 회사에 왔을 때 이미 수도 없는 건축사사무소를 다니면서 감리비 견적을 받았고, 전부 대동소이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여 군데 이상 찾아다니면서 엄청나게 할인된 금액으로 계약한 것이다.

건축사사무소들의 열악함은 이런 경제적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당장 직원들 월급에 사무실 임대료를 내야 하는 입장에서 그들에겐 썩은 동아줄도 구명줄이기 때문이다. 지금 건축시장은 한겨울을 넘어 완전 냉동고 수준이다. 20년 전 설계비 수준은 오히려 퇴보한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감리영역을 가지고 한참 왈가왈부 했다. 사실은 그 이전에 정당한 비용을 먼저 받아야 되는 것이 우선임에도 논의의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설계도 중요하지만 직접 공사 과정에서 중요하게 역할 하는 감리는 결코 간과되어서 안 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핵심은 감리를 불필요한, 또는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건축주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감리비 지불에 아까워하고, 경비절감 개념으로 다가서고 있다. 시공자 역시 마찬가지 관점이 팽배하다. 특히 중소 규모의 경우는 더더욱 심해서, 원설계자가 감리를 하건 제3자가 하건 푸대접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현재처럼 건축주가 직접 감리자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에서 건축사사무소가 감리비를 정상적으로 받기는 쉽지 않다. 특히 개인 건축주인 경우는 규모를 막론하고 이런 일이 많다. 종종 소형 건축물의 공사 중 사고가 발생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거나 특정한 경우라고 치부하긴 어렵다. 인건비라는 것이 명확히 책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현장을 가는 모든 방문 횟수는 경제적 산물임은 당연한 일이다. 당연히 얼마 안 되는 감리비는 이런 현장 감리 횟수를 조절할 수 밖에 없다. 책임감 운운하는 것도 경제적 뒷받침 없이 불가능하다. 속된 말로 착공 때와 준공할 때만 가는 감리도 발생되는 것이다. 현장을 자주가게 하려면 결국 감리비의 정상화가 필연적이다. 경험 많은 소위 능력자가 상주감리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그들이 상주감리 할 수 있지 않는가? 봉사활동도 아니고…

과연 감리비를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현실적으로 현재의 건축주가 직접 감리자를 선택하는 방식에서는 어느 누구도 제값받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규모에 따라 대응이 달라져야 하겠지만, 별도의 감리 계약을 법률적으로 대행해주는 과정도 한번 고려해 볼 만하다. 예를 들면 지방 자치 단체의 구청 단위와 같은 범위의 기관을 만들고 이 지역에 등록된 감리 가능 건축사를 대상으로 감리자를 후보군으로 하고, 해당 지역 내 모든 건축주들은 개별 건축사가 아닌 기관과 계약하게 하는 것이다. 기관은 법적으로 일정한 기준을 만들어서 감리 보수 요율에 입각한 계약 대행을 하며, 이 과정은 일종의 공과금처럼 협상되지 않는 다. 기관운영은 별도의 비용을 책정하거나 감리비의 일부를 수수료 개념으로 확보한다. 사실 감리 계약 대행 조직 또는 기관이 별도로 시설 내 구성될 필요는 없다. 구청 같은 지방 자치 단체 산하에 설치되며, 감리대상 건축물 신고로 주택 채권처럼 감리비가 자동 산정되어 청구서를 건축주에게 보내면 된다. 그리고 감리비는 등록된 감리자에게 업무 보수비로 지불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감리비는 건축주와 건축사 간의 흥정대상이 아닌 정당한 감독비용이 된다. 사실 이런 정책이 안정화 된다면, 논란이 많은 소규모 건축물의 특검이나 현행 감리제도 또한 전면 재검토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당한 보수를 받는 감리자의 책임으로 완결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구태여 옥상옥 같이 몇 십 만원에 건축사들이 하루를 꼬박 시중드는 일에 시달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당하고 적합한 감리비 선정 논의가 공정거래 시각의 담합이 아닌 공과금 개념으로 발상 전환을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생각이 아닐까?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