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히 시작되었다. 신년에 대한 기대나 희망을 노래하는 기회도 적었고 작년 내내 피폐해진 몸과 마음이 그대로 올해로 이어지는 단순 연결의 한 해처럼 무기력하고 심심한 시작이었다. 연말연초부터 시끌시끌한 강력 사건이 터졌고 여기저기서 말도 안 되는 화재나 사고가 한 해의 시작이라는 희망의 이미지를 불태워버리기에 충분하였다. 마치 2014년의 업보를 말끔히 청산하지 못한 원죄처럼 2015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행복공식’이라는 것이 있다. 2002년 영국의 로스웰(Rothwell)과 코언(Cohen)이 18년 정도 동안 다양한 상담을 통해 얻은 결과를 지표화한 것인데,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계량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 이론은 간단하다. 인간의 행복은 개인적 특성(P; Personal), 생존조건(E; Existence), 고차원적 정신상태(H; Higher order)로 표현가능하며 생존조건은 개인적 특성보다 5배, 고차원적 정신상태의 만족감은 개인적 특성 3배 더 중요하다는 이론이다. 물론 이 이론이 수학처럼 완벽하게 성립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역시 통계나 확률이 지닌 원초적 편차의 리스크나 조작의 가능성도 배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공식이 시사하는 바는 조금 생각해 볼만은 하다. 바로 인간의 생존조건이 다른 행복요소보다 더 행복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생존조건이란 말 그대로 건강이나 돈, 인간관계 같이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것들을 말한다. 두말하면 잔소리인 셈이다. 그 가운데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다른 나라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영국의 소득과 생활만족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조금 흥미롭다. 성직자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소득 수준과 행복이나 만족도는 나름 상당한 관계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하긴 소득이나 연봉 같은 먹고 살 거리가 있고 나서야 생활에 대한 만족이나 사람관계에 대한 만족 나아가서는 육체적 건강까지 가능할 것이다. 좀 속되기는 하지만, 이른바 온전한 생존조건이란 이런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온전한 생존조건 속에 있는 것인가. 그리 온전하게 원하는 소득 챙겨가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들이라고 다들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아직은 행복한 편이다. 아직 애들 뒷바라지도 남아있는데 무기력하게 회사에서 떠밀려나오는 사람은 이미 부지기수이며 자영업 같은 그들의 제 2의 인생조차도 성공보다는 실패 확률이 더 높으니 이 정도면 이미 사업도 아니고 투자도 아닌 위험천만한 도박인 셈이다. 그들에게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사치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들이야 직장 생활이나 해보았지 아직 직장 경험도 없는 젊은 친구들의 사정은 더욱 가관이다. 4년 동안 열심히 배운 대학 졸업반 학생들의 취업률이 전국 대학평균 55.3%라는 것도 참으로 기가 막힌 수치인데 그나마 제대로 된 회사에라도 들어갈라 치면 어디 언감생심 50%를 넘볼 수 있을까 싶다. 역시나 이들이 포함된 청년 실업률도 작년에 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한창 꿈을 키워야 할 청년들이 열정 페이다 뭐다 하면서 노예도 그런 노예가 없을 정도이며 벌이가 없으니 당연히 빚만 늘어가는 청년실신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는 것도 요즘의 참담한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그 와중에 수많은 갑질과 뻔뻔함을 견뎌내어야 하고 그렇지 않아도 먹고 살 걱정에 피폐해진 가슴에 세금폭탄이다 월세 폭탄이다라는 것들이 기세등등 상향곡선을 그릴 조짐이니 이거 뭐 어떻게 살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나마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연말정산 폭탄이다 뭐다해서 속이 타 들어가는데 수많은 미생(未生)들 앞에서 배부른 소리라도 하는 양 싶어 찍소리도 못하고 있으니 스트레스도 이런 스트레스가 없을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경제 지표도 너무 좋지 않다. 지난해 전 산업 생산증가율이 1.1%로 통계가 처음 시작된 2000년 이후 이미 최저치를 기록했고 특히 건설투자증가율은 -0.8%나 감소하면서 우리를 여전히 힘들게 하고 있다. 나라 밖 사정도 좋지 않다. 곧 들이닥칠 미국의 금리인상은 또 얼마나 우리를 힘들게 할 것이며 일본이나 중국에도 또 얼마나 휘둘릴지도 여간 걱정이 아니다. 어디 이뿐이겠냐 마는 하나하나 말을 하자면 끝이 없을 지경이다.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2002년 어느 대선 후보의 유행어가 되었던 문장이 불현듯 생각난다. 그때도 참 살기 만만치 않았다 싶기는 하다. 그러나 그 때가 언제던가. 꽤 오래 전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지금 그 때가 다시 생각나는 것일까. 정말 좀 나아지긴 나아진 것일까. 나아질 수 있는 것일까. 온전한 생존조건이 확보될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 모두가 행복해 질 수는 있는 것일까.

올 한해 2015년의 얼굴 표정이 너무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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